고요한 항해1        강소영릴릴

March 16 - April 24, 2011


2006년 남극 킹조지섬에서 조디악 고무보트에 몸을 싣는 것이 내게 그리 어렵지 않던 이후로 배를 타고 여행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먼저 내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가장자리 섬부터 전부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철책과 바다로 에워싸인 작은 땅에 사는 내가 자연스레 발길이 닿은 군사지역의 섬을 작업의 모티프로 삼게 된 건 어쩌면 필연적인 듯 하다.

2009년 2월 백령도에서 시작한 첫 섬 여행은 마라도~독도~마라도~가파도~금문도~백령도로 다시 도돌이표처럼 이어졌다. 처음 백령도를 갈 때만해도 다소 긴장이 감돌긴 했으나, 오히려 한가로운 느낌이 더 많이 들었고, 역사적 시류와 상관없이 늘 평화롭게 존재하는 풍광과 한적한 삶의 모습으로 다가왔었다. 뱃멀미 하나 없이 그렇게 가볍게 마쳐진 첫 바닷길에 자신감을 얻게되자, 태평양을 마주한 최남단 마라도에서 바닷소리 앞에 6개의 마이크를 세우고 사운드엔지니어들과 라이브녹음을 했다. 내친김에 독도까지 어렵게 스케쥴을 잡아서 동도와 서도, 섬 전체를 휘돌며 둘러보게 되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고, 처음 백령도를 갔을 땐 고화질 HD촬영을 못한 터라, 베테랑 촬영감독님과 제대로 찍으러 다시 가려니 너무나 많은 사건이 서해바다에 터지면서, 2011년 2월에 꼬박 2년이란 시간이 흘러서야 다시 갈 수 있었다. 원래 ‘고요한 항해-A Voyage to Silence’는 이름 그대로, 복잡한 문명을 떠나 조용하고 사람의 발길이 적은 곳으로 가고자 했던 나의 조그만 바램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끄트머리 섬들을 처녀 뱃사공처럼 유람하며 보고 느끼며 선입견 없이 그려내려고 했는데, 작년 9월, 타이페이 개인전을 하며 대만과 중국사이의 금문도(金門島)를 가게되면서 작업의 방향이 좀 더 역사적 시간을 조망해보는 풍경비디오 설치 로 압축되었다. 말 많고 한 많았던 동북아시아의 섬에서 마주한 것 중 몇 개의 작업만 이번 <고요한 항해-I>에서 보여준다. 그 동안 정말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 소리들을 채집했지만, 이번 개인전에서는 세 개의 섬 풍경비디오와 옥상정원에 관객이 향유하며 산책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유사해변을 설치하는 것으로 요약하였다. 백령도에서 직접 담아온 굴껍떼기들로 엮은 돌꽃나무 밑에서 한가로이 해먹에 누워서, 눈 앞에 몰아치는 검은파도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 회색 빛 백령도 북쪽 해안가, 햇살 비치는 늦가을 금문도 해변, 그리고 1948년 미 공군의 폭격으로 두 동강이 난 포탄 가득한 독도의 물 속 깊은 곳.

모두가 때로 성난 시기를 거쳤지만, 때로 평화로운 곳이라는 유사점이 있다. 2010년 우연한 초대로 금문도를 먼저 못 보았다면, 백령도가 단지 위험하고 슬픈 곳으로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갈등이 해소되고 시간이 흘러도 표표히 있는 섬의 모습과 금문도 사람들을 만난 후, 나는 사라져간 풍경과 지나간 세월의 모습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깊이 생각하게 됐다. 시간의 무상함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흔적인 ‘용치’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굴, 그리고 그걸 따서 다음세대를 키워낸 할머니들은 무엇보다 위대하게 느껴졌고 이번 전시에서 돌꽃나무로 다시 피어났다. 이제 나의 고요한 항해는 출발일 뿐이다. 앞으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동아시아의 바닷길을 더 다니고자 한다. 한가롭고 깨끗한 섬 바람과 갈매기소리를 기대했던 나의 유람은 곳곳에 포탄의 흔적, 깨끗한 해변가에 세워진 섬뜩한 용치(龍齒)를 만나게 되었지만, 여전히 삶을 튼튼히 이어가는 아름다운 흔적도 발견하게 된다.

‘고요한 항해’ 전시는 비디오설치를 통해 관객에게 해안가 산책을 하는듯한 경험을 줄 것이다.

관객이 작품을 통해 이미 지나간 시간의 흔적과 현재를 교차시키며 풍경들을 보게 되길 바란다.

‘검은파도’ 애니메이션은 종이에 한 장씩 그려 제작했고, 격렬한 파도는 물과 불을 동시에 상징한다. 작년 가을 송광사에서 마주한 사물(四物)소리인 법고, 범종, 목어, 운판 소리는 ‘지상.하늘.바다.지하’의 모든 것의 초월을 염원하는 니르바나(Nirvana)의 소리로써 이번 전시 내내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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