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낯설지만 분명한         강성은

December 10 - December 23, 2014

Night Fin of Mountain, 2014, pencil on paper, 135 x 13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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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지각과 사유의 시공간


인간-특히 예술가-이 어떤 존재-대상-를 지각(知覺)한다는 것은 단지 눈과 뇌의 생물학적이고 인과적인 작용의 결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몸 전체를 통한 물리적 체험과 정신을 통한 내적인 체험이 결합된 종합적인 의미 작용의 산물이다. 따라서 지각의 과정에서는 지각되는 대상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놓이는 시공간적 환경-배경-과 지각 주체 사이의 상호작용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강성은의 작업 역시 주체와 대상이 특정한 시공간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내는 지각과 사유의 종합적 결과물이다. 작가에게 ‘특정한 시공간에 놓인 존재’라는 조건은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강성은이 밤의 시간에 바라보는 풍경과 존재들을 담아내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루는 낮과 밤의 시간으로 구성되며 밤은 일반적으로 무의식의 세계이자 숨겨진 내면을 상징한다. 어둠이 주는 불안함의 감정은 밤에게 고뇌와 죽음, 슬픔과 비탄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세계와 시작,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치유와 휴식의 시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표현처럼 밤의 휴식은 자연스러운 섭리이다. 밤은 고요하고 달콤하게 세계 속 존재들에게 스며든다. 밤이 깊어질수록 태양에 뜨겁게 달구어졌던 대기는 식어가고 햇빛 아래에서 우리의 눈을 자극했던 이미지(image)들은 잠잠해진다. 우리의 감각과 정신은 안정된다. 밤이 깊어지고, 하늘과 별과 세계 속 존재들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나 자신의 실존과 평화를 느끼는 감동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강성은은 밤이야말로 세상의 존재들을 진정으로 지각하고 경험하며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낮에는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시각에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전한 것이 아니다. 예술가가 재현하는 이미지들이 아무리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 모두를 형상화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지극히 인간이 가진 하나의 감각에 의존해 지각한 부분이자 근사치일 뿐이다. 그것은 세계를 온전히 보여줄 수 없다. 이러한 한계를 알기에 강성은은 더욱 밤의 어둠에 집중한다. 빛이 사라지는 밤에는 많은 이미지들이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존재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덜 보이는 상황은 –촉각과 후각을 비롯한-온 몸의 감각들을 통해 대상을 느끼고 세계 속 존재들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밤의 풍경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기’라는 주제는 작가의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되었다. 익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강성은은 일상의 많은 시간을 KTX(Korea Train eXpress)나 자동차 안에서 보낸다. 자연스럽게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일도 늘어났다. 그리고 작가는 밤에 매료되었다. 이 낯설지만 필연적인 경험의 첫 날, 작가는 그 기억을 옮기기 시작했다. 2011년에 진행되었던 일련의 시리즈들인 , , , 은 그 결과물들이다. 산과 나무, 비닐하우스(vinyl house), 크고 작은 건물들, 하늘, 땅, 그리고 이 모두를 감싸 안은 밤의 기운은 작품을 마주한 관객까지 사색적인 지각의 과정으로 인도한다. 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다층적 감각을 통한 지각의 경험은 강성은의 작업에 완벽히 녹아있다. 밤은 우리를 향해 바다와 같이 밀려온다. 작품들은 베일(veil)처럼 우리를 감싸고 우리는 그 안으로 흡수되어 들어간다. 단지 눈으로 볼 뿐이지만 우리는 온 몸으로 밤의 공기를 느끼고 촉각적 감상에 빠지게 된다. 작품은 우리를 포함한 이 세계와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작가는 (2014) 시리즈로 다시 한 번 밤의 풍경이 전해주는, 지루함처럼 느껴지는 극도의 고요함 속에 숨겨진 세계-세계 속 존재들-의 울림을 전해준다. 밤은 암흑이기에 모든 형상을 담아낸다. 침묵하기에 모든 소리를 함유하고 정적(靜的)이기에 모든 움직임을 포함한다. 따라서 강성은이 그려낸 밤의 풍경은 특정한 시간대를 의미하는 단순한 밤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시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세계를 불러내고 미처 인식하지 못한 존재와의 만남을 유도하는 미지(未知)의 시공간이다.
미지의 시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강성은이 선택한 재료는 연필이다. 연필의 선택은 반전의 묘미를 제공한다. 연필은 예민하고 명확한 형태 표현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대표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료를 존재의 흐릿한 덩어리만 감지할 수 있는 밤의 풍경에 사용했다는 것은 다소 의아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 한 번의 반전이 만들어진다. 강성은의 연필화는 구체적인 형상이나 날렵한 선의 이미지가 아닌 무한한 덩어리, 혹은 공간으로서의 밤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연필로 어둠을 표현하는 것은 그렇게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노동을 수반한다. 연필 선들은 너무 진해서도, 날카로워서도, 힘이 넘쳐서도, 부족해서도 안 된다. 작가는 수련하듯 호흡을 가다듬고 몸의 사용을 엄격히 제어한다. 모든 감각은 종이 위에 그어지는 연필의 미세한 질감에 집중된다.
결과적으로 강성은은 연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진한 강도와 밀도를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강성은의 작품은 어떤 매체를 사용한 것보다 묵직하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깊이감의 표현도 탁월하다. 작가가 지나치게 연필의 표현에 천착하고 심취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러나 강성은은 자신은 결코 연필에 대해 어떠한 집착도 갖지 않으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른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연필은 밝음과 어두움만으로 일상의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재료이자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오랜 시간 집중했던 수묵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매체였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또한 연필은 무게감과 깊이감을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일반적인 생각도 작가의 도전 정신을 자극했다.
따라서 우리는 강성은의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 연필이라는 매체보다는 선을 긋는 반복적인 행위의 과정과 그 과정 속에 담겨 있는 시간의 중첩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연필 선으로 화면을 채우는 행위는 작가 안에 존재했던 세상 존재에 대한 지각의 기억들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연필선이 쌓이는 만큼 하루의 시간이, 생각이, 그리고 세계에 대한 사색이 쌓인다. 결국 선을 긋는 행위의 반복은 단순한 노동의 쌓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의 반복을 암시한다. 실제로 강성은은 특정한 행동을 무한 반복하는 작업 중에 끝없는 사색에 잠기기를 즐긴다. 그리고 사색이 끝나는 순간 작가는 스스로 창조해낸 또 하나의 밤을 만난다.
밤의 풍경화가 작업실의 벽을 채울수록 강성은의 작업은 (2014)처럼 추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으로 전이되고 형상과 비형상의 세계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작품은 마치 색면 추상(Color-Field Abstract)처럼 검정색의 공간-면-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완전한 어둠은 형상의 사라짐이 아니며 오히려 모든 형상을 감싸 안은 무한의 공간으로서 존재한다. 강성은에게 그것은 마치 공색(空色)이자 진색(眞色)인 먹(墨)이 우주 만상의 색을 포괄하고 자연과 세계의 원리를 함축하는 정신적 상징인 것과 같은 맥락의 검정색이자 어둠이다. 어둠은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의 개별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조금 멀어지면 미지의 공간으로 보이기에 추상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여정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이 세계는 구상이지만 동시에 추상이다. 수백, 수천, 수만 개의 이미지들이 중첩될수록 형상이 사라지는 것처럼 작가적 지각의 과정이 쌓일수록 심원(甚遠)한 공간에는 세계 속 존재의 울림이 채워진다.
한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말했듯이 흑백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극단적인 추상의 산물이기에 강성은이 밤을 그림에 있어 연필을 이용해 흑백의 색조만을 담아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술했듯이 강성은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풍경을 사진처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작가의 체험,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작용을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종착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할 즈음 작가는 새로운 지각의 경험을 표현한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빛의 포착이다. 작가는 빛에 주목한다. 밤의 어둠 속에서는 아주 미세한 빛도 감지할 수 있다. 밤을 비추는 빛은 더 찬란하다. 이제 밤은 어둠과 빛이 중첩된 양가적 공간으로 전이된다. (2014) 시리즈는 어둠 속에서 빛을 처음으로 지각하게 되는 순간의 인상을 옮긴 것이며 (2014) 시리즈는 달빛을 재현한 것이다. 특히 은 가로 길이가 4.2 미터(m)인 대작으로 빛의 영사(映寫)를 통해 달빛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프로젝터의 빛은 서서히 밝아지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밤하늘에서 빛과 어둠을 인지하는 과정을 은유한다.
밤의 풍경에 달의 이미지가 새롭게 등장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예로부터 달은 상상력과 창조력, 영감을 가져다주는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졌다. 동시에 그것은 흐르는 시간의 순환을 상징하며 원형(圓形)의 시간을 내포한다. 그 형상이 불변하는 해와 달리 달은 변화를 내포한다. 달은 초승달에서 보름달, 그믐달을 지나 완전히 사라진다. 그리고 그 변화는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달이 그렇듯 식물은 해마다 소생(蘇生)하고 동물은 생장하며, 계절과 우주의 흐름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달은 태어나고 생장하고 죽는 존재의 역사를 구현한다. 변화하는 모습을 가진 그것은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영원한 회귀를 나타낸다. 결국 어둠 속에 뜬 달은 불분명함과 분명함을 만나게 하는 중간 지점을 창조한다. 그리고 이 모호한 중간 지점은 작가를 창조적 몽상으로 이끈다. 달이 뜨는 밤에 예술가는 자신의 직관적인 내면에 집중하여 상상과 창조를 이끌어낸다.
강성은의 작업은 단순하다. 그러나 그것은 외면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강성은의 작업은 밤의 어둠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모호함이며 이중성을 가진 어둠 속 달과 같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의 진리를 드러낸다. 궁극적으로 강성은의 밤 풍경화는 존재론적이고 미학적인 통찰의 결정체로서 존재하며 고요한 사유와 명상의 시간을 선사한다. 명상의 시간이 끝나고 밤의 베일이 걷히는 순간 우리는 그 동안 감추어졌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The Visible and the Invisible)의 신비로운 만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_이문정(조형예술학 박사,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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