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현(顯現)         구자현

January 6 - January 26, 2016

"스크린에 등장하는 원, 타원은 의도적으로 중심을 조금씩 옮겨가며 어긋나게 찍혀 있다. 약간씩 중심을 옮김으로써 가장자리에 색 면의 띠를 남긴다. 석판화에서와는 달리 스크린에서의 작품의 특징은 색 면을 한 겹 한 겹 덮는 데 있다. 먼저 올린 색 면은 차례로 뒤에 덮이는 색 면에 가려 사라지고 다만 색 띠를 가장자리에 남김으로 행위의 전후, 시간의 흐름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색 면은 하나하나가 시간의 층을 이루며 시간적 선후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것은 진행된 시간의 흐름을 보는 것이다. 스크린은 새로운 시간성에의 탐구를 가능하게 했다. 즉 석판화에서 행위가 멈추어지고 판면의 흔적을 고스란히 화지에 옮기는 것이, 정지된 한 순간, 한 시점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스크린에서의 색 면은 한 겹 한 겹 덮여짐으로써 경과된 시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목판화에 오면 그의 행위는 더욱 명백하게 드러나고 인식된다. 단단한 목질의 나무는 조각도로 새겨나가는 그의 손길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판면 위엔 그의 행위만이 남는다. 판면을 조각도로 새겨나가는 반복적 행위는 작품의 핵심이다. 그 행위는 무 목적의 무상한 움직임이다. 마치 플럭서스의 머스 커닝햄이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듯 구자현의 동작은 어떠한 서사성이나 재현의 목적도 없이 마냥 판면을 일정한 밀도로 새겨 나가는 작업이다. 행위는 재현의 의지를 떠남으로 해서 그 자체가 문제의 대상이 된다. 구자현의 행위는 수행적 측면이 강하다. 그의 행위는 유한한 판면을 넘어 무한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함으로써 구자현은 무념무상의 정신에 도달하게 된다. 측량 가능한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초월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구자현의 목판화, 스크린 판화에 대해서_최승훈(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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