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얼굴        이호억

August 29 - September 23, 2018

덕숭산III_화첩에 분채_33x50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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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억은 종이와 먹을 주재료로 하여 동시대 한국화 혹은 수묵화의 영역을 연구하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호억은 본인에게 주어지는 고립과 침전의 시간 그리고 내면의 속삭임들을 온전히 받아들인 후, 이러한 내용을 다시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선보이고자 한다. 그에게 종이는 단지 추상적 이미지가 담기는 하나의 표면이 아니다. 그에게 종이는 촉각의 감각이 존재하고 감정에서 드러나는 표정이 존재하는, 마치 피부와 같은 물성을 간직하고 있는 매체이다.

“나는 종이를 피부와 같다고 인식한다. 잘 찢어지고 다시 붙고 피나고 번지고 하는 특징이 종이와 같은 물성으로 느껴진다. 내가 그리는 산수풍경은 신체의 일부이거나 표정의 주름을 표현한 것이라 말하면 가장 근접한 설명이 될 것 같다. 얼굴을 만지듯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마른 붓과 묵힌 먹, 그리고 분채와 석채로 감정(마음)을 담아 종이에 남긴다.(작가노트 중)”

이러한 작업에 대한 이호억의 태도는 작업을 할 때에도 드러난다. 그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숭고함을 표현하기 위하여 흡사 종교적 의식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작품에 대한 태도와 몸짓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연약한 피부와 같은 종이 위에 천천히 수놓듯 선을 이어간다. 스스로 선택한 고립과 고독으로부터 출발하여 작가의 내면에 켜켜이 쌓인 어두운 침전의 시간은, 이후 피부 위로 표현되는 작가의 세상으로 새로이 태어나게 된다. 이호억은 그의 내면과 마주하여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풍경을 바라보고 현장에서 그려야지만 그의 내면과 마주하며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위에 언급된 작가의 시선은 어쩌면 개인적 감각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호억은 자신의 작업을 개인적인 자리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의 작업을 바라보는 관점은 동서양이라는 구분을 넘어 시대적 흐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에도시대 이후, 근대화를 도모하며 나타났던 일본화의 변천과정에서부터 중국에서 서예를 근간으로 시작된 화풍에 이르기까지 동양화에 대한 그의 식견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이호억의 작업은 가히 범아시아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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