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살무늬에 대한 추억

June 2 - June 20, 2004

박현정, 백지희, 백진숙, 지니서, 윤향란, 이성아, 이기영, 이정아

박물관에서 빗살무늬토기를 보았다. 나는 늘 그 사선으로 내려 그은 반듯한 선들의 자취를, 그 무늬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빗살무늬토기는 온전하지 못하다. 깨지고 흩어진 파편들을 얼추 주워 모아 본래의 모습을 안타깝게 추억하며 ‘아말감’ 한 흔적으로 처절하다. 아마도 그것이 역사일 것이다. 흙을 빚고 그 무른 표면에 정성껏 선을 새긴 이는 자신의 흔적을 비로소 영구히 각인한 이다. 그의 시간, 몸놀림이 기억되었다. 그 손길, 손의 떨림, 노동이 순연하게 흙의 살과 함께 저장되었다. 선을 그은 그 손은 다 썩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그가 남긴 선은 수 천년의 시간을 이겨 내 눈앞에서 환생하고 있다. 나는 그 손의 온기와 진동, 체취를 안타깝게 찾는다. 토기의 피부 위에 새긴 선은 햇살, 심장의 박동, 알 수 없는 주술적 의미 등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토기의 선들은 상상과 몽상을 유혹하고 하나의 선에 대해 마냥 숙고하게 한다. 흙의 말랑한 질감과 부드러운 저항을 밀치고 음각으로 새겨진 선의 여정이 모여 리듬을 만들고 균형과 장식을 보여준다. 몸의 규칙적인 놀림이 고스란히 육화된 이 선들은 어떤 소리를 낸다. 그 음은 사라졌지만, 들을 수 없지만 해독을 기다리는 암호처럼 침묵 속에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누가 그것을 처음 시작했을까? 선은 반복되고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가파르게 줄다가 그친다. 단순한 선 하나가 그릇 하나를 또 다른 존재로 변화시켰다. 이제 그것은 단순한 그릇이기를 그치고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온전히 간직한 살로 다가온다. 그릇의 피부에 누군가가 여전히 심장소리를 내면서 살고 있다. 선의 생애와 존재의미를 새삼 생각해본다.

박현정, 백지희, 백진숙, 서현진, 윤향란, 이기영, 이성아, 이정아 이 8인은 납작한 화면에 자신들의 몸에서 솟아 오른 선을 보여준다. 나로서는 이들의 그림에서 한결같이 그 선의 미묘한 매력을 만난다. 이들의 선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고 다른 만큼 개별적인 세계를 증거한다. 이들의 선은 단순한 드로잉이나 그림을 묘사하는 데 종속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한다. 아니 선의 또 다른 생애를 꿈꾼다. 이들의 몸에서 식물처럼 자라 나온 선의 감각적인 배열을 만나는 일은 자신만의 감수성과 회화에 대한 이해, 재료에 대한 신체의 놀림, 공간에 대한 해석, 그리고 자기 몸의 신경과 반응, 육체적 경로에서 받아들이고 통과시킨 시간의 자국이 자아내는 체취를 맡는 일이다. 여전히 그림이 하나의 그림으로 자존하는 핵심에 위치한, 깊숙하게 눌려지고 그어진 선, 그렇게 한 작가의 모든 것을 응축하고 전적으로 대신하는 선을 만나는 것이다.



박현정은 민화와 전통회화에서 빌어온 대상을 단순화시키는 한편 자신의 감각으로 재구성해서 화면 위에 단촐하게 올려놓았다. 장식성과 함축성, 그리고 우아한 선의 율동과 기운이 평면 위에 엄격하게 짜여져 있다. 자연현상에 대한 신중한 관찰과 반짝이는 감성, 전통에 대한 유니크한 해석 아래 스며 나온 선과 형상은 동양화의 핵심을 만나게 해준다.

백지희는 자기 마음의 굴곡들, 여러 감정과 단상들을 선을 실 삼아 직조한다. 느슨하게 쳐져있는가 하면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고 더러는 타이트하고 헐렁하고 또는 겹쳐져 있거나 교차하는 이 수많은 선들의 직조는 화면 안에서 살아 숨쉰다. 허공 위에 둥둥 떠있기도 하고 가라앉는가 하면 사라지다가 출몰하기를 반복한다. 그녀의 화면은 그대로 ‘몸’이다. 중력에 의해 아래로, 수평으로 기운 네트 같은 선의 몸들은 순간 순간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 심리의 미묘한 상황성을 보여준다. 선은 단어나 음정 같은 존재이자 감정의 단자들이다.

백진숙은 흐리고 엷은 먹 색으로 드로잉을 한다. 그녀의 선은 덧없이 모여 희미한 형체를 드리우다가 여백, 허공 밖으로 퍼진다. 자기 생의 경험들, 몸의 기억들을 더듬는 그림들은 옹알거림이나 독백처럼 처연하다. 현실과 몽상, 상상이 혼효하는 이 공간에 그려진 부분과 남겨진 부분들은 고립되어 적막하게 분산되어있다. 그 공간은 서늘한 여운, 잉여의 감정들이 드나드는 장소다. 그리기와 쓰기가 공존하는 붓들이 일어서고 눕기를 반복하면서 어눌하게, 마지못해 그려놓은 그림들은 절제와 함축으로 비벼진 생의 단상을 풍경처럼 보여준다.

서현진은 색채를 머금은 사각형의 종이, 그 얇은 피부 위에 가늘고 예리한 선들로 그물, 모자를 연상시키는 형상을 드리운다. 섬세한 신경망 같기도 하고 더러 촘촘히 직조된 망사형을 연상시키는 그림이다. 섬세한 조직을 갖춘 생명체 마냥 종이는 살아난다. 피부로서의 화면은 생태학적 지각의 장으로 미세하게 세계를 호흡하고 지각하고 소통하며 중재한다. 육체적으로 경험할 수 없고 오로지 정신으로만 경험할 수밖에 없는 3차원의 공간인 그림의 공간, 2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의 공간으로 보는 이의 눈과 정신을 자극하는 평면은 일종의 펜스이기도 하다. 여기서 선은 그 펜스로서의 화면, 평면을 또 다른 공간으로 확장시키거나 정신적 활력이 가능한 기이한 구멍 같은 것으로 우리들의 눈과 가슴 앞에 내놓는다.




윤향란은 종이를 캔버스 표면에 붙이고 목탄과 파스텔로 드로잉을 했다. 그렇게 해서 그려진 선들은 가늘고 짤막한, 두툼하고 굵은 선들이며 그것들은 사선으로 직선으로 흐르다가 멈추었다. 이 선들은 자연에서 취한 것들로 길, 도로, 능선을 연상시킨다. 마치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이 그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몸에서 술술 풀려 나온 선이다. 동시에 그 선들은 찢겨지고 해체되어 진동한다. 화면에 부착된 종이를 마구 뜯어 다시 붙여 만든, 꼴라쥬로 이룬 화면이다. 섬세하게 그어진 선들이 이룬 형상을 다시 지워나가고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선의 자취들은 매혹적이다. 동시에 화면은 빛 바랜 피부가 된다. 오랜 시간의 여러 경과와 흔적을 기억하고 있는 바탕 면에는 이전의 몸을 안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파편화 된 선들만이 자욱하다. 소멸과 폐허, 파괴와 해체, 자아의 부정과 완성된 그림에의 저항, 직관과 우연에의 매료, 망친 것을 포용하고 감싸서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그 선들은 의미 있게 환생한다.

이기영은 하얀 바탕 면에 먹 색이 부분적으로 응고되고 침전되어 이룬 미묘한 흔적으로 커다란 꽃의 자취를 보여준다. 예리하고 얇게 저미듯 올라온 요철의 윤곽선이 꽃의 형상을 그려 보인다. 꽃잎을 표현한 표면은 무수한 미세 선분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졌고 이 표면효과는 물에 의해 지워지고 남은 먹 가루가 회칠한 한지에 고착된 흔적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군데군데 다시 붓으로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는 과정을 거쳐 세월의 앙금인 듯 깊이 있는 시각효과를 연출했다. 지금껏 보아온 동양화의 선과는 색과 선이 맛이 감각적으로 구사되어있다. 그렇게 해서 화면은 막혀있기도 하고 뚫려있기도 한 이중적인 반투명효과를 보여준다.

이성아는 채색된 장판지의 피부 위에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사선을 그었다. 그것은 밭고랑처럼 자연스럽고 본능처럼 자리한다. 이 반복적인 선들의 의미 없는 집합은 때론 처연하다. 그림과 글씨를 이뤄나가는 기본인 선, 칸을 나누고 공간을 구획하기 위한 원초적인 선긋기, 그러면서도 그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선들이다. 아울러 장판지를 일정한 간격으로 접었다 피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수평과 수직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그 위에 가루 물감을 사용해 채색하는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수평과 수직의 선들은 무한한 시간의 지속과 그 흐름을 체감하게 한다.





이정아는 한지 위에 먹선 만으로 대상의 윤곽을 간결하게 잡았다. 하얀 한지 바탕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균질한 먹 선으로 문인화에서 즐겨 쓰이던 소재를 단독으로 설정해, 흑백만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그것은 먹의 쓰임의 독특한 경우로 다가온다. 대상의 윤곽만을 균질해 보이는 먹 선으로 클로즈업하여 묘사한 것이자 목탄과 아교로 바림을 가진 색 면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에 맞추어 가는 선으로 윤곽이나 색 면으로 오려 한지에 붙이는 방법으로 구성한 것이다. 묽은 먹을 반복적으로 덧입히는 과정에서 화면에 몰입하는 자신의 몸과 대상이 일치되는 경험이 강조되는 한편 자연, 꽃으로 상징되는 이미지는 여전히 동양회화의 정신성 내지 내용을 암시화 한다. 단호하고 부드러우며 섬세한 선들이 그려내는 이 꽃은 전통과 현실, 이상과 감각 사이에서 떠돌고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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