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July 14 - August 4, 2010

새로운 패러다임 긋기





때때로 사람들은 무언가에 의해 망각된 시간의 저편으로 서서히 스며들어가는 야릇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다. LA 다운타운의 허름한 호텔 로비에 세월만큼이나 고풍스런 피아노가 놓여 있고 사람들의 시선이 멈춘 그 시점,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하고 신비로운 시간으로 사람들은 제각각 빨려 들어간다. 이기일은 2007년 LA 전시에서 다운타운의 유서 깊은 과거의 공간을 현대적인 갤러리 공간에 재현함으로써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였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사람들은 어느덧 과거의 공간으로 스며들어 지금 현재를 잊고 과거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잠시나마 과거와 조우한다. 작가는 지나간 시간 속 위대한 스토리를 현재에 재구성하여 시공간을 초월한 공간에 그들을 초대한다.
과거의 시간 속 의미 있는 것들은 역사로 남겨지고 그 역사를 증명하기 위한 전달자로서 작가 이기일은 미래의 대중문화예술 매개자이다. 잊혀져 가는 과거의 사료를 토대로 현재의 기록들을 집대성하는 그는 과거로의 여정을 통해 그가 역설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다.
“Papa’s Band and OB’s Cabin”은 최근 몇 년간 작가의 실험적, 탈 미술적 범주의 진행형 프로젝트이다. 혹자는 왜 미술인이 미술 문화 공간 안에 대중 음악의 역사를 전시로 재현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의 독창적인 발상은 그러한 비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 신호탄이 되는 전시가 <괴짜들: 군웅할거 한국 그룹사운드 1960-1980>이다. 이 전시는 과거 한국 그룹사운드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과거의 영광을 현재로 재현해서 미래의 문화 유산으로 남길, 중요한 아카이브 전시라 할 수 있다. 대중 음악의 오랜 역사에 비하면 이와 같은 시도가 때 늦은 감이 있으나 한국 대중문화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각 시대를 재조명하여 그 위상을 드높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원대한 포부의 희망찬 시발점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동일한 관점으로 바라볼 때 이기일의 두 번째 프로젝트 공연 역시 잊혀져 가는 과거의 공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임과 동시에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한 공감 프로젝트이다. 현대적으로 꾸며진 ‘OB’s Cabin’의 세트는 과거 수많은 뮤지션들을 배출한 명동 한복판의 ‘OB’s Cabin’의 명성에 비한다면 소박하고 초라한 분위기일지 모르나 한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들이 다시금 현재에 되살아나 관객들에게 과거를 회상하게 하고 흥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들을 통해 대중 음악의 불모지에서 열정으로 자신들의 예술혼을 불살랐던 그들을 단순히 추모하려는 것이 아닌 시대를 초월해 존재해 온 대중 음악을 문화의 역사에 자리매김하고 그로 인해 다음을 기약하고자 한다.
그의 야심 찬 마지막 단계의 희망 프로젝트는 그룹 사운드의 메카인 영국 리버풀에서 한국 그룹사운드 1세대의 공연을 선보이려는 것이며,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과감히 도전하고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며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이기일의 프로젝트들은 현재 그 스스로 던지는 화두이며 어찌 보면 시대를 초월한 그의 철학이 아닐런지…..
문화(=예술)의 범위가 포괄적이며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범주로 확산되어가는 이 시점에 문화의 하위 개념들을 가르는 경계는 점차 모호해지고 각각의 개체로 구분 짓는다는 것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와중에 작가 이기일은 이러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뜨리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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