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원

August 4 - August 25, 2011

김채원, 아네모네, Pigment Print,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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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부터 되찾은 ‘놀이 성(城)’



누구나 어릴 때 경험했던 소중한 기억들은 지워질 수 없으며, 자기 역사를 써 내려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김채원의 경우도 초등학교 시절에 겪었던 일상의 사건이나 놀이의 체험들은 소중하며 현재의 작업에서도 근간을 이룬다. 건축을 전공했던 아버지의 영향일까? 어린 시절 김채원은 자기만의 공간을 꾸미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 시절을 보내던 그의 시기는 문화의 정체성 혼란기로 야기되던 1990년대와 함께 한다. 바깥의 놀이문화가 실내 안으로 들어오면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때문에 그의 집 안에 인공정원이 만들어졌고 김채원은 자연스레 그 안에서 자기만의 정원을 만들어 거의 혼자 소꿉장난과 공상놀이를 하며 지냈다.
소꿉놀이 도구는 길에서 주운 것들, 선물 받거나 구입한 것들, 그리고 공상하는 것들이다. 이 어린이는 학교생활 외에 자기 울타리(영역) 안에서 그러한 물건들을 가지고 쌓거나 나열하며 또한 생물체(거북이, 붕어 등)와 더불어 자유로운 상황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조형적 언어체계를 구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채원에게 있어 이러한 영역의 놀이는 창작으로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의 단계를 거쳤다. 첫째, 미술제도 속에서 학습의 오류에 의한 주제의 빈곤과 사고력 결핍은 그에게 상대적으로 ‘본다는 것’의 본질적 물음을 유발한 계기가 된다. 이로 인해 그는 밖으로 나가 자아의 경계지점을 찾는 시도를 한다. 둘째는 서양화 전공이라는 장르적 경험보다는 다양한 재료(펜, 오일, 수채, 금속, 컴퓨터 프로그램 등)를 습득했다는 것이 작가의 상상력을 발현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의 작업에서 보여 지는 다양한 재료들은 내용보다 형식이 앞서는 국내미술의 장르의 관념적 벽 앞에서 명분을 잃지만 재료라는 것은 그 자체로, 오브제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가진다. 셋째는 사회적 현상․사건의 경험에 의한 반작용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정성을 얻지 못하고 또한 마음의 큰 상처로 인해 어릴 적 간직했던 고유의 ‘놀이 성(城)’이 끌어올려져 되새김질 하게 된다.


김채원은 예술고등학교 시절 광화문 교보문고 실내의 군중들을 유화로 그려냈다(1997). 그 당시 그는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산업화된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 내에서 군중의 주체로서 고독한 군중의 심리를 낯설게 바라보거나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으로 응시하는 태도를 본능적으로 취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 태도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지점(inter-space, 사이 공간)을 더듬게 되며 이 탐구를 통해 플래시 몹(Flash Mob ;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시도로 특정 웹사이트를 통해서 새로운 소통을 찾는 퍼포먼스 행위)이라는 기획(2007)을 하게 된다. 이 계기는 2차원에서 4차원으로 넘어가는, 즉 작가의 의식 세계를 열어주는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김채원이 자기 언어를 구사하며 가시화한 지점은 유학시절 끝 무렵인 2008-2009년 사이에서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어릴 때의 놀이를 보지 못했지만 앞에서 ‘놀이 성’의 되새김질이라고 언급했듯이 직감적으로 같은 공감대의 놀이를 하는 것이다. 다만, 아무런 잡념 없이 꾸밈없이 자연스레 놀았던 것과 의식, 무의식의 경계에서 아픔과 고통, 갈등과 편견, 실재와 가상 등의 체험으로 쏟아낸 이미지 현상과는 큰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김채원의 작품은 자기언어와 객관적 언어의 사이에 있다. 그 사이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사물과 생물체에 조형적 규칙을 부여하였다. 그 만의 조형적 규칙은 새로운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환영의 깊이를 두고 한 작업은 아니라 생각되며, 가변적이며 유동적인 형태를 띤다. 김채원은 밀실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하나의 점(點)과 우주공간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왔다갔다’하며 뇌(안)와 시각(밖)의 연상 작용을 통해 이미지 사전을 엮는다. 그 속에 들어가는 오브제의 개체는 작가의 짧은 삶에서 맺어진 에피소드의 산물이다. 이들이 모여 작가의 시나리오에 편재된다. 작가는 이것을 다시 사회적 관점에서, 자연적 관점에서, 과학적 관점에서, 공상적 관점에서 돌출되는 현상들과 ‘관계 짓기’를 하며 시처럼, 문학처럼, SF소설처럼, 만화처럼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어 간다.

어느 사람에게나 기억의 방들은 존재하지만, 쓰여 지는 가치에 따라 숭고함의 변별력이 생긴다. 그런 면에서 김채원은 작은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고 볼 수 있다. 버려진 조그마한 부속품에서부터 마음이 가는 주제로까지 이어진다. 세상은 보지 못한 것을 찾는 자에게는 간섭하지 않는다. 미술의 창작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인식할 때 생기는 묘한 아우라에 의미를 둔다. 그 인식은 발견에 의해 개발되고 창조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공상은 ‘놀이 성’ 안에서 하나씩 영역을 쌓아갈 때 더 큰 진정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관훈(큐레이터,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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