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Stranger 2        박현두

November 26 - December 6, 2011

박현두는 현대인의 소외에 대한 시선을 우리에게 친숙한 방송국의 텔레비전 스튜디오나 뮤지컬 공연장과 같은 대중과의 소통을 매개하는 장치들 속에서 그 원래의 문맥과는 동떨어져 고립화된 인물을 등장시켜 유희적인 감각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드러낸다.

현대 사회를 ‘스펙타클의 사회(society of spectacle)’라 명명했던 프랑스의 사회학자 기보드(Guy Debord)는 막스(Karl Max)의 소외(alienation) 이론의 연장선 상에서 스펙타클의 개념을 통해 상품과 그것의 지배 하에 놓인 자본주의의 일상적 삶을 비평한다: "생산의 근대적 조건을 지배하는 사회의 모든 삶은 스펙타클의 거대한 축적으로 예상된다"(기드보, 1967년, <스펙터클의 사회>中에서). 기드보에 따르면 스펙타클은 자본주의의 성취된 단계이자 경제적 이데올로기로, 모든 것의 의미에 자각에 부여하면서 현대 사회가 지닌 삶의 유일한 비젼의 보편화를 적법화한다. 여기서 스펙타클의 개념은 항상 다양성속에서 소비 사회의 소외의 특별한 형태 속에서 보는 방식을 참조한다. 결국 스펙타클은 삶에 대한 자본주의의 지배의 프로파겐다적 장치로 다중의 의미작용을 취하며, 이러한 스펙타클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공간 안에서 스펙타클의 수용자이며 유희의 주체이어야 할 관객은 끊임없이 소외의 과정을 거쳐가며 고립된다.
박현두의 작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텔레비젼 스튜디오나 뮤지컬 공연장은 확실히 현대 사회의 스펙타클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장소들로, 그 하나하나가 일종의 스펙타클을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들에게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 매체는 점점 더 현실에 관한 우리의 지각을 지배하고 세계에 관한 우리의 경험은 매체를 통해 점점 확대되어 간다.

현대사회는 양립될 수 없어 보이는 여러 요소들이 이리저리 맞물려서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특성을 보인다. 특정 공간의 일반적 용도와는 양립될 수 없는 인물의 등장은 그 장소조차도 본래의 문맥을 벗어나는 낯선 곳으로 변모시킨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작가는 시시각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되는 반복 과정을 지닌 TV 세트와 세트의 본래적 특성과 어울리지 않는 개인을 그 장소에 데려가 촬영함으로써 소통되지 못한 채 돌파구를 찾고 있는 현대인의 소외에 관한 시선을 새로운 스펙타클로 창출해 낸다.

그럼에도 작가는 셋트가 주는 분위기와 인물군이 가지고 있는 코드를 조금이라도 맥락을 맞추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가령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업인 탁구 선수가 등장하는 사진에서는 무거운 토론이 행해지는 스튜디오에서 풍겨 나오는 긴장감을 스카이서브를 하는 탁구 선수의 행위와 대비시키려 했고, 또 스튜디오에 원래 있던 피노키오 인형과 색채와 분위기의 유사성에서 조커(Joker)의 복장을 한 인물을 등장시킨 사진에서는 슬픔을 숨긴 채 웃는 표정을 한 조커를 통해 극대화된 감정의 양면성을 포착하려했다. 그리고 여러 개의 모니터가 등장하는 사진에서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여러 개의 모니터들을 조율한다는 의미의 유사성에서 지휘자를 등장시켰고, 사각형 모양의 여러 개의 미니 셋트들이 설치되어 있는 스튜디오에서는 얼마 전에 죽은 친구를 떠나보내며 봤었던 유골 단지 보관소가 떠올라 유골 단지를 든 인물을 등장시켜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하는 등 작업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박현두는 인물과 세트간의 조작적 효과를 세심히 고려하며 전반적인 이미지의 구성에 관해 숙고한다.

박현두는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을 문득 어떤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장소로 바꾸어 놓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나타남을 경험하게 한다.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 시각이 무효가 되면, 이때 감추어졌던 사물의 진정한 의미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연극에서 현실의 친숙한 주변을 생소하게 보이게 하여, 극중 등장인물과 관객과의 감정적 교류를 방지하게 하여 관객이 무대의 사건에 대해 연구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을 '소외효과(alienation effect/Verfremdungseffect)'라 규정지었다. 브레히트는 소외효과로서 관객이 극적 사건에 대해 거리를 갖게 하고 지금껏 당연히 받아들이는 일을 비판적 사건으로 바라봄으로써 관객의 감정이입을 거부하고 관객의 냉철한 이성과 비판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박현두의 작업은 기존의 코드를 해체하고 새로운 감수성으로 새로운 형식 속에서 생경(生梗)한 세계를 보여주는 가운데, 관객들이 사물을 인식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창출하는 가운데 현상 너머의 실체를 통찰하도록 한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텔레비전 스튜디오가 그곳과 무관한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작가는 현상의 본질에 관한 이해를 재경험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관객이 통찰력을 발휘하도록 하며 이미지의 본질에 집중하게 한다. 이 경우 사진 이미지들은 ‘현실(reality)이 어떻게 이해되고 구축되어지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매체의 증대된 역할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호로 기능하며 작업의 의미들의 적절성을 분명하게 만들고 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이미지와 말과 테크놀로지는 권력의 구조 안에 뒤엉킨다는 점을 간파하고 모든 시각적 이미지는 어떤 표현 수단보다 그 순환에 있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고 어떤 시각적 재현의 형태도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자율적 정체성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매체는 우리의 눈과 귀를 한 방향으로 고착시키는 절대적인 권력으로 군림하는데, 거기서 점차 무력화되는 개개인의 소외와 고독이 박현두의 작업 속에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이 그다지 현학적이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작가의 특유의 유희적 감각성 추구로 인한 것으로, 대상과 현실에 대한 감각적인 향유 의식이 비판적 성격과 양면적으로 표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해체하기 위한 장치로 등장인물을 희화화시키거나 감각적인 색채 사용, 의도적인 세트적 장치의 노출 등이 나타나는데 대상의 이미지화, 시각화가 주요한 방식으로 채택된다. 이러한 향유의 이면에는 소외의식이 동전의 양면처럼 녹아있고 향유 욕구 그 자체가 현대인의 소외 의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전 작업인 시리즈는 낯선 땅에서 느꼈던 이방인으로서의 상처와 걱정, 일그러진 사고 그리고 편집병적인 시선을 자연 환경 혹은 생활 환경 속에 작가 스스로를 배치하여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보여주는 셀프포트레이트 작업으로 보여주었다. 환경과 자신과의 관계를 부합시키고 동화시키는 한편 이방인으로서의 탈피를 꾀하며 자아를 인식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이번 작업은 자기 자신을 벗어나 현대인의 삶의 일반적인 양태를 미디어적 장치들을 통해 조망하며 현대 사회의 소외의 문제에 다가간다. 박현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부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다시 해체하고 재정립하여 비판 의식을 부여함과 동시에 감각적인 향유의식으로 융해시키면서 현대인의 삶의 조건들을 주의 깊게 질문하고 있다.




손영실(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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