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rred Lines        원지호

March 4 - March 26, 2015

원지호 작가를 처음 본 사람은 그의 남다른 패션 감각과 소년 같은 이미지 때문에 그를 단순히 밝고 천진난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게다가 작가는 친구도 많고, 술도 좋아하죠. 그래서 작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작가가 그저 단순하고 즐겁기만 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저도 그랬고, 작가의 영국 유학 시절 동료들도 그를 밝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가의 치열한 생각과 고민,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의 작업과 만나는 순간엔 그 모든 것이 오해임을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반전(反轉)’입니다. 작가는 예상 외로 차분하고 작은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작업을 할 때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조용합니다. 게다가 작품은 엄청난 노동을 요합니다. 작가는 단순한 작업의 과정을 인내하는 진중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무 막대를 케이블타이로 동여매는 단순한 작업을 반복해 중첩 구조물을 만들어낸 을 가까이서 보면 건축공사 시 인부가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구조물(Scaffolding structure)이 떠오릅니다. 덕분에 작품은 실제 임시 구조물처럼 무한 중첩, 혹은 해체, 변형이 가능해집니다. 총 11개의 조각은 원하는 형태로 덧붙여질 수도 해체될 수도 있습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웅장한 실루엣, 그리고 수많은 경우의 수로 조립할 수 있는 가변성, 이러한 특징들이 콘스탄틴 브랑쿠시 (Constantin Brancusi)의 의 변주곡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작가는 형태적으로도 심오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작품에 내포된 의미는 그보다 더 명징하고 무겁습니다. 작가가 에서 형태의 해체와 중첩이라는 변화의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둔 것과 에서 보이는 깃발의 형태에서 우리는 작가가 공동체의 프로파간다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 유학시절 제국주의의 상징을 여과 없이 드러냈던 수많은 깃발들에서 작가는 언제부턴가 불편한 긴장을 느꼈다고 합니다. 작가의 비판적 작업은 그 위압적인 공동체의 상징에 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깃발의 강한 상징을 깨기 위해 작가는 케이블타이와 나무를 이용해 깃발의 형태를 해체하거나 변형, 중첩시켜 그 형태와 상징의 본질을 흐려지게 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처럼 작가는 국가와 깃발과 같은 상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위한 허상이라는 모순된 지점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 국민으로서 당연한 고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정치적 메시지를 공격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무한 중첩과 변형이라는 방향으로 풀어낸 것이 원지호 작업의 특별한 지점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난한 작업 과정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반전(反戰)일 것입니다. 작품의 형태가 해체와 구축을 오간다고 해서 작가가 공동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분단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정치적 이해관계와 싸움에 휘말려 각기 두 개의 깃발과 두 개의 애국가 아래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의 통일을 염원합니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이념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영원히 기억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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