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ing by         이종건

October 14 - November 6, 2015

표면에 침투한 풍경, 전환의 여정


전시장 한 켠에 설치된 마룻바닥을 딛고 올라가, 이보다 조금 움푹 파인 구멍을 내려다본다. 그곳엔 이종건이 자주 써오던 카펫 장식 패턴이 새겨진 원형의 마룻바닥이 있다. ‘Under the Moonlight’는 그가 마룻바닥으로 작업해 온 공간적 여정, 시간, 기억이 겹겹이 중첩된 작업이다. 작가는 여러 공간적 여정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마룻바닥 조각들을 모아 마치 연극무대와 같은 공간을 마련한다. 그리고는 한걸음 한걸음 관람객들의 시간을 무대 위로 불러 모은다. 은색 패턴이 어렴풋이 빛나는 원형의 바닥은 우물에 비친 은은한 달 그림자 같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듯’, ‘하늘의 달을 바라보듯’ 이는 작가가 연상한 장면이다. 고개를 숙이어 저만치 내려다보는 표면에 조명 빛이 어렴풋이 빛나고, 기억의 심상들이 차분히 어린다. 아득한 시간으로 거슬러 가는 듯. 마음은 닿을 수 없는 내면으로 향한다. 그렇게 내면의 정원이 달빛에 일렁이듯 개인의 심상에 스민다. 이곳은 작가가 실내로 들인 기억의 풍경이 개개인의 내면과 만나는 무대이다. 내면의 정원을 조우하는 곳, 아인스트(einst), 독일어로 ‘한번’, ‘옛날에’, ‘미래의 어느 날’(이푸투안 Yi Fu Tuan)의 세계가 여기서 일어난다. 이번의 개인전 'Passing By'에는 장소를 유영해온 작가의 여정을 거쳐, 기억, 장소, 시간 사이에서 멈칫하던 풍경들이 머문다.

장소와 기억, 상실의 과정으로부터

사회문화적 이동 속에서 장소감(sense of space)을 예민하게 감지해온 이종건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던 환경 속에서 공간의 특정 양식이 전이되어 온 방식과 조형적 특징에 관심을 가져 왔다. 미국에서 자신이 거주하던 오래된 목조 주택으로부터 시작하여 버려진 집에서 수거한 앤틱 마룻바닥은 2006년경부터 현재까지 작업의 중심적인 모티브로 등장해 왔다. 마룻바닥은 당시 그에게 낯설었으나 친밀해진 공간, 이질적인 환경으로부터 모색된 집을 상징하는 대표적 요소가 된다. 마룻바닥 외에도 벽, 가구, 계단 등 공간의 내부를 이루는 요소들은 마치 시간과 공간을 거스르듯 전시장의 공간 구조에 반응해 재배치되어 왔다. 미국 유학 생활 이후 한국에 귀국하여 선보인 두 번의 개인전 Almost Home (2012), Home After Home (2013)은 이러한 맥락을 따른다. 전시에서는 카펫 문양이 새겨진 바닥설치작업이 배치되고, 자신이 살던 집의 건축적 요소가 파편적으로 공간 속에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그는 낯선 환경에 건축적 요소를 재배치하여, 문화적 의미가 와해되고 형식만이 남은 상황을 주목해 왔다. 이번의 개인전은 작가가 그간의 작업에서 지녀온 구조주의적 태도로부터 사뭇 다른 분위기를 형성한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지 근 3년, 그는 기존의 문맥이 낯설어지는 현재로부터 친밀했던 시공간의 의미가 상실되어가는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주목한다. 낯설지만 익숙한 모양새로, 다시 낯선 장면으로. 그에게 장소와 기억은 작업의 시작점에서부터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었다. 그 기억은 표면에 새기어지는 행위를 통해 공간에 환기되어 왔다. 하지만 존재했던 의미들이 무화되거나 소실되는 순간에, 작가는 그 찰나를 모른 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익숙했던 기억으로부터 나와 사물의 표피 속으로, 존재의 내부로 침투해 들어간다.



표면으로부터 내부로



전시에서의 작업은 마룻바닥에 문양을 새겨 넣은 기존의 맥락을 따르나, 표면의 안팎으로 더 깊숙이 침투된다. 카펫, 벽지의 문양이 새겨진 표면은 이질적인 문화적 패턴을 재해석하는 동시에 노스텔지어적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Under the Moonlight’에서, 아득한 시선이 표면에 새겨진 패턴보다 더한 잔상을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시선은 표면에 맺힌 상을 거쳐 이를 머언 낙원의 시공간으로 이끈다. 한편, 벽면에 걸린 ‘River of Stars’에서는 문양을 새기는 조각적 행위를 통해 표면의 물성을 꿰뚫는 듯한 긴장감마저 감지된다. 하나의 커다란 문양이 견고한 마룻바닥을 깊숙이 뚫고 들어가 벽면에 새기어진 것만 같다. 전시에서의 시선은 집안에 걸린 테피스트리 마냥 자연스럽게 바닥에서 벽면으로 이동한다. 이 작업에서 마룻바닥에 새겨진 문양은 물리적 압력을 배반하듯 주위로 흩어져 나가는 모양새이다. 작가는 넌지시 자기-해체를 유도하여, 그곳에 잔상이 개입될 틈을 허락한다. 여기서 분해되는 패턴의 이미지는 스스로를 해체하여, 그 자리에 복수의 이미지를 허용한다. 견고한 표면에 어느덧 기억의 잔상들이 스민다. 이 연상작용은 애초에 그가 카펫 문양을 바닥에 새길 시부터 진행되어온 것이다. 작가가 주목했던 카펫의 기원에는 외부 자연을 실내 공간으로 들이고자 한 인간의 염원이 담긴다. 폐허로 남은 폼페이의 정원 벽화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로마인의 낙원에 대한 이상향은 건물의 내부에까지 정원을 끌어 들여 벽 전체를 꽃, 나무, 새의 풍경으로 장식했다. 지금은 폐허가 된 고대 건축의 파편으로부터 우리는 이상향에 대한 욕망을 더 강력하게 엿본다. ‘River of Stars’에서 흩어지는 파편들은 시선에서 아득해진 풍경을 열망한다. 작가가 떠올린 은하수가 껌껌한 사물의 표피를 뚫고 밖으로 나아가는 순간이다.



부정으로부터 긍정으로



공백, 그, 존재 가능성의 질료를! 우리들은 가능성의 영역에서 추방된 것이다. - 앙리 미쇼 Henri Michaux


프랑스 시인 앙리 미쇼의 시구에는 가능성을 부정함으로써 순수한 실존을 모색하려는 강한 긍정이 담긴다. 이종건의 작업에서 조형적 구조로 지탱돼 온 건축적 요소들은 이번 전시에서 과감히 소진된다.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를 소진시키는 과정은 작가에게도 쉽지 않았으리라. 그가 표면을 다루는 방식은 마룻바닥에 장식적 문양을 새기는 행위에서 나아가 사물의 질료적 가능성을 탐색해 보인다. 견고한 마룻바닥은 표면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불에 그을린 채로, 까맣게 탄 채로, 부러지고, 구멍이 난 채로 드러난다. 오랜 시간 동안 작가에게 익숙한 환경이었던 세계가 구멍이 나고 공백을 드러냄으로써 파열음이 일어난다. 전시장의 한가운데 곡선형을 이루며 서있는 ‘Between Sky and Earth’를 보면, 마룻바닥은 거칠게 부서진 채로 상단과 하단 부분으로 구분된다. 상단의 마룻바닥은 불에 그을려 전체적으로 새까맣고, 하단은 고유한 표면을 유지해 그 대비감이 강한 작품이다. 흑백이 상하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부서진 경계면은 파열된 채로 서로를 마주한다. 두 면 사이의 불규칙하게 부서진 표면은 은색의 알루미늄 안료로 칠해져 오히려 강조된다. 이곳은 불협화음의 리듬과 어조를 지탱하는 사이 공간(in-between space)이다. 언어화할 수 없는, 분절된 세계가 사물의 안팎을 관통해 이 사이 공간에 머문다. 작가에게 표명할 수 없는 징후, 의미가 상실된 세계에서의 실존은 마룻바닥의 고유한 의미가 소실되는 과정 속에서 치열히 모색된다. 표면을 파고드는, 표층 아래의 실존감이 일종의 각인되거나 파손된 흔적으로 드러난다. 부러진, 훼손된, 타버린 마룻바닥에서 보이는 자기-해체의 폭력성은 자신에게 의미가 없어진 맥락과 논리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작가가 토로하듯 ‘논리적 구조의 당위성과 설명으로부터 회의적인’ 시간으로부터, 그는 사물의 내부로 침투하여 자신의 주체를 간절히 새기고 또 분해한다.



소진에서 생성으로, 상실의 복귀



훼손되고, 손상된 질료의 구멍, 홈, 틈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통과하는 문이자 통로이다. 이 소진된 질료의 틈 사이로 이질적인 물성이 자리를 대신하고, 그곳에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스민다. 마룻바닥이 전체적으로 그을린 ‘Misty Night Sky’에서 작가는 시꺼멓게 타들어간 나무의 표면을 파고 들어가, 벽지의 문양을 새겨 넣고 검게 칠하여 마감한다. 마룻바닥 한가운데서 생성된 구멍, 뾰족한 경계면이 마치 산세마냥 펼쳐지고, 훼손된 내부는 시멘트로 얇고 담담히 메워진다. 건축 공간의 기본적인 질료인 시멘트는 텅 빈 공백을 중성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그렇게 사이의 공간은 잠재적인 풍경으로 비워진다. ‘Twilight Reflection’에서도 타들어간 경계면의 구멍은 텅 빈 공허로 드러나기보다 다른 풍경을 담아낼 거소로 마련된다. 뻥 뚫린 구멍에는 불투명하게 마모된 동판이 채워져 이미지를 비추고, 상감기법으로 새겨진 식물의 패턴이 아련한 풍경처럼 구멍의 주위에서 흩날린다. 뿌연 동판 앞에 서니 자아의 이미지가 일렁이고, 주위의 전경 또한 아른거린다. 포착할 수 없는 이미지들은 사물의 내부로부터 외부의 풍경으로 솟구치듯 경계 면에서 풍경을 이룬다. 이 모든 과정은 표면을 관통하여 시간을 통과하는 여정, 이곳에서 저기로 건너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이렇게 익숙한 구조를 해체하고, 질료를 부단히 파고들어 내면의 거소를 마련한다. 이곳에는 달, 산, 호수 등 자연의 풍경이 스치고, 내면의 정원인 원초적 풍경이 솟아난다.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서성거리면서도 먼 곳을 바라보며 희망을 찾은 작가...’ 이 표현은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가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를 칭한 말이다. 가능한 것을 모두 소진하는 상황에서 발견된 이 ‘잠재적인 긍정’은 이종건의 이번 작업에 응축된다. 이는 상실된 것들을 복귀시키고, 다음의 여정으로 향하는 전환의 힘이 될 것이다.


심소미 / 독립 큐레이터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