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utomatic Message        국동완

March 5 - March 29, 2016

Society With No Answer, 52x77cm, 종이에 색연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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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부터 29일 까지 국동완 작가의 'The Automatic Message'전이 진행됩니다.


회광반조(回光返照)는 외부로 향하는 빛을 돌려 자신을 비춘다는 뜻으로, 화두(話頭)를 듣고 나서 좌선을 하며 깨달음을 얻으려는 참선법인 불교의 간화선(看話禪)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것이 나의 드로잉 방법과 물리적으로 같은 구조라는 것은 드로잉을 시작하고 몇년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내가 하는 드로잉을 참선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의 참선법(드로잉)은 다음과 같다. 화두(그리고 싶은 대상)를 프린트하여 유리에 붙이고 그 위에 종이를 올린 다음 유리 뒤에서 빛을 비춘다. 그러면 바닥의 이미지가 보이게 되는데 이것이 그림의 바탕이 된다. 바탕 이미지의 형태를 따라 그리기도 하고 그 모양이나 뜻에서 연상되는 것을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손이 그리는 것을 그저 지켜본다. 바탕과 연필이 접촉하는 종이 위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끊임없는 제안들 중 하나를 손이 낚아채는 순간은 매우 짜릿하다. 그렇게 선택된 하나의 선은 어떤 형상으로 귀결될 것을 손에게 다시한번 요구하고, 손은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의식의 흐름에 손을 맡긴다거나 '그리는 손'과 '그리는 나'를 분리하려는 태도는 자동기술법(自動記述法)을 연상시키지만, 나의 드로잉은 그것을 따름과 동시에 비껴나간다. 무의식의 순수성을 좇는 대신, 나는 손이 가진 태생적/후천적 습관, 주입된 기법, 중간 중간 개입되는 이성적 구현기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니,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런 자세는 의미없는 습관적 끄적거림만을 낳을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도달한 어떤 풍경, 한덩이의 조각모음이 나와 나, 그리고 나와 외부를 연결하는 솔직한 접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속 모든 요소들의 연결고리로서의 기능은 드로잉이 끝난 후의 관찰 과정에서 생겨난다. 관찰이 끝나면 그 의미들은 소멸하고, 감상할때마다 매번 다른 맥락과 상징이 나타난다. 이것은 기록한 꿈이 읽힐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경험에서 시작된 나의 작업들의 공통점이다. 책, 조각, 드로잉 모두 '모호함을 분명하게' 표현하고자 하였는데 드로잉은 그 과정이 주는 촘촘한 즐거움때문인지 보다 일상적으로 지속할 수 있었다. 최초의 드로잉 바탕은 꿈에서 낚아챈 단어들이었다. 그때 나는 꿈이 무엇이든 던져주길 기다리기도 했다. 지금은, 꿈에서 깨어나도 초현실같은 일상이 화두를 쏟아내고, 나는 다시 눈을 감는 대신 현실을 마주한다. 다양한 화두들은 저마다의 속도와 강도로 내 안에 머무는데, 그 흔적은 그림에 여과없이 드러나기도 하고 오랫동안 은근하게 출몰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림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라던지 색상, 관계들은 또 다른 차원의 작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방향이 한바퀴 돌아 더 큰 힘으로 내게 돌아올 것임을 예감한다. _국동완 작가노트 중





A Ferry 작품 비평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으며, 모든 예술과 문화는 아우슈비츠 학살 이후 그에 대한 긴급한 비판까지 포함해서 쓰레기이다.”라고 선언했다. 그의 이 선언은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본래적 질문으로 회귀한다. 현존하는 모든 예술은 인간에 의해 인간임/인간됨을 표현하기위해 만들어졌다. 다시말해 모든 예술은 인간존재에 대한 이해와 존엄을 표출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그의 말을 변주해 보자면, 죽임을 당해야 할 (disposable) 인간들을 상정하고 그들을 무참히 학살한 수용소 아우슈비츠의 존재는 인간을 위해 인간 존엄을 그리는 예술 존재 자체를 묵살한다. 아우슈비츠는 사고(accident)가 아닌 사건(incident)으로, 현실에는 존재했지만 그 존재의 진실성(realitism)은 불가능했다. 인간성을 복원하는 예술의 진실성은 삭제되고 예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와 같이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인 사건을 목도했다. 비극으로서 세월호는 우리 모두가 그 현장에 있었지만, 모두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초월한 현실 넘어에 있는 사건이다. 인간성이 묵살된 세월호 이후에 예술은 어디에 있는가? 모든 예술을 아도르노처럼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는가? 긴급히 호출된 이 질문에 국동완은 세월호의 초/현실성으로 세월호를 변주해 답문한다.



작가는 아도르노와 같은 이유로 더 이상 그의 예술을 향유해내지 못했다. 그가 어떤 작품을 의도하던 간에 그 작품들은 뒤집어진 거대한 배로 환원되었다. A Ferry, ‘배’는 다른 힘에 의(依)한 수동(受動)적 기술(description) 이 아닌, 그가 그리려는 능동(能動의 결과도 아닌, 작가의 무/의식의 벡터의 방향을 따라 주체적 ‘피동’(被動)으로 그려졌다. 작가가 고안한 회광반조라는 자동기술법을 통해 작가는 자기 자신(무/전의식)을 따라 자동적으로 A Ferry를 그려내었다. 일년 하고도 반년이라는 작업의 세월 동안 배를 둘러싼 무수한 사건과 정치가 작가의 일상에 배태된채 지나갔다.



A Ferry 는 국동완 예술의 계보학, 그 중축에 위치해 있다. 영국에서 몇년간 작가는 무의식을 예술화하여 의식화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프로이트가 “꿈”이 나도 모르는 ‘내’(무의식의 나) 가 ‘나’(꿈을 꾸는 의식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데에 착안하여 자신의 “꿈”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아 글자/그림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프로이트의 그림자는 A Ferry 에도 드리워져 있다. A Ferry 는 작가가 승객들을 잃은 비극적 우울증(melancholy)에서 시작해 애도(mourning)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A Ferry 의 단편적인 이해이다. A Ferry 는 애도를 통해 주체가 대상의 상실을 이해하고 상실의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는 프로이트에 전면적으로 반박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애도를 충분히 하지 않음으로써, 세월호가 작가자신에 들어와 주체와 대상의 비트 상태 즉, 멜랑꼴리의 상태로 존재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작가가 A Ferry 를 멜랑 꼴리로 작품화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작가는 멜랑 꼴리를 극복해 내기 보다는 우울증안에 스스로를 포획함으로써 자신을 멜랑 꼴리한 상태에 두어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고한다.



작가는 A Ferry 를 통해 프로이트의 관점을 뛰어 넘으려 하는데, 이를 위해 무의식과 타자를 보다 혁명적으로 재해석한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소환한다. 타자는 나와 완전히 다르다라는 프로이트의 타자의 관점을 비판하기위해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나의 내부에 있으면서 외부에 있는 비체 (abjection) 개념을 도입한다. 멜랑 꼴리 상태에서의 세월호는 작가 안에 있다는 것이 프로이트적 해석이라면, 크리스테바의 접근에서 세월호는 이제 작가의 내부이며 외부에 위치한 피부와 같은 곳에 있다. 작가는 A Ferry 를 통해 세월호 사건을 대문자 타자(Other)에서 소문자 타자로(other)로, 자신의 무의식적 구조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시키는 동시에, 다시 그 타자를 외부적으로 객체화(objectification) 하는 이중적 변주를 시도하여 작가 주체와 세월호 타자(other)를 뫼비우스띠로 비트한 "비체"로 탄생시켰다. A Ferry 는 국동완 안에 있다. 국동완 안에 A Ferry 가 있다. 멜랑꼴리인 국동완은 A Ferry 인 동시에 A Ferry 가 아니다.



문화사회학,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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