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선

구명선은 자신이 직접 겪은 현실 속에서 특정 상황에 어울리는 모델을 골라내고, 이를 작가 개인의 서사 안에 배치해 ‘소녀에 대한 고찰(少女考)’을 이미지로 구현해낸다. 그는 잡지, 인터넷 게임, 카탈로그 등에서 여성 이미지를 오려내고, 여기에 만화 속 소녀의 이미지를 덧입혀 새로운 인물을 만든다.

긴 흑발, 가느다란 목선, 깊이 팬 쇄골과 별처럼 부서지는 눈동자. 구명선의 연필 끝에서 태어난 소녀들은 아름다우면서도, 무표정한 얼굴 아래 낯선 에너지를 속삭인다.

반복되는 선 긋기와 지우기, 번지듯 그려지는 선들은 미대 입시에서 흔히 사용하는 드로잉 방식이다. 이러한 연필화 기법을 통해 흑백 사진 특유의 중간톤과 그림자, 하이라이트가 표현되며, 작가의 감정이 소녀의 몸에 스며들어 더욱 밀도 있는 정서를 만들어낸다.

특히 어두운 배경에 소녀의 몸을 감싸는 희미한 오라는, 현실에 발 딛지 못한 불안하고 연약한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이 장면을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가 지닌 판타지를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