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square and square: 우태경

3 - 25 August 2022
  • Press Release Text
    저자 : 안진국 Lev AAN (미술비평)
    제목 : 암시와 초과: 디지털 성좌에서 증식한 회화적 갤럭시
    우리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고 이야기를 짓는다. 우태경은 작은 디지털 조각 이미지들을 이어 물리적 화면을 만들고 회화적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우주, 그 가늠할 수조차 없는 무한의 거리를 뚫고 도달한 제각각 다른 별빛들은 가상의 선으로 묶이고,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인터넷, 그 다양하고 다층적인 심도의 공간에서 떠돌아다니는 디지털 이미지 조각들은 우태경의 캔버스에 흩뿌려지고, 그것들이 증식하고 엮여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이것은 ‘성좌’의 탄생이다. 성좌는 임의적이고 언제나 새롭게 연결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킬 수 있는 ‘구성적인’ 인식 체계의 표상이다. 이렇게 밤하늘의 별자리가, 인터넷의 별자리가, 예술의 별자리가 생성된다. 우태경은 디지털 성좌를 잇고 자라나도록 하여 자신만의 회화적 은하를 탄생시킨다. 인터넷 공동체의 취향이 작가의 감성이라는 중력으로 묶이고, 그 안에서 서로가 밀고 당기고 폭발하고 증식하며 회화적 갤럭시를 구성한다.
     
    인터넷 우주를 떠도는 이미지들의 현현(顯現)
    우주와 인터넷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밤하늘은 우주를 보여주는 스크린이고, 디지털 기기의 검은 화면은 인터넷의 스크린이다. 밤하늘이 수많은 별을 품고 있듯이, 디지털 기기의 검은 화면에는 언제든 발광할 준비가 된 수많은 이야기와 정보가 잠재되어 있다. 누구든 밤하늘의 별들을 임의로 이어 새로운 별자리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듯이, 디지털 기기만 있으면 누구든 납작한 검은 화면에 무한한 정보들을 임의로 불러와 그 정보들을 연결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우태경은 자신의 캔버스에 디지털 천체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캔버스에 물리적인 디지털 이미지의 우주를 만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디지털 이미지의 은하를 만든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주에는 다양한 은하가 존재하듯이—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약 1천7백억 개 이상의 은하가 존재한다고 추측한다—, 작가는 인터넷 우주의 수많은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선별하여 하나의 캔버스를 구성한다. 따라서 캔버스마다 각각 다른 디지털 이미지의 은하가 생성된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별들이 칠흑같이 어두운 우주에서 반짝인다면, 우태경이 수집하고 편집한 이미지들은 새하얀 백색의 캔버스에서 자신을 반짝이듯이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 순간까지가 도약의 전 단계, 즉 생성 중인 디지털 갤럭시라 할 수 있다. 이 디지털 갤럭시는 테레핀과 유화 냄새로 가득한 현실 공간에서 근육과 힘줄을 당기고 풀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물리적 몸짓에 의해 회화적 갤럭시로 완성된다. 별들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 듯 작가는 캔버스의 이미지들을 증폭시키고 이어서 관계 맺게 함으로써 이미지들의 다양한 성좌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회화적 갤럭시에는 서로 엮이고 중첩된 다양한 성좌와 그 성좌가 발산하는 수많은 이야기와 형상, 함의가 담겨 있다.
    따라서 우태경의 작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비물리적인 디지털 작업인 전반부의 작업과 물리적인 회화 작업인 후반부의 작업이다. 전반부 작업은 디지털 이미지 수집에서부터 시작된다. 초기 작업에서는 자신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사용했으나, 이후 네이버나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을 통해 이미지를 수집했고, 현재는 소셜 미디어(SNS)를 이용해 이미지를 선별·수집하고 있다. 수집된 이미지는 작가의 디지털 작업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지는 분절되고 파편화되어 서사를 상실한다. 작가는 이렇게 서사가 거세된 다양한 조각 이미지들을 임의로 배치하여 캔버스에 프린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유롭고 유동적이며 쉽게 복제와 편집, 삭제할 수 있었던 비물질적이고 비물리적인 이미지 데이터는 고정적이며 복제와 편집, 삭제가 어려운 물질적·물리적 형태를 지닌 인쇄 이미지로 변모한다. 데이터로만 존재했던 가상의 이미지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실의 이미지로 바뀌는 것이다. 디지털 이미지가 캔버스에 프린트될 때부터 작업의 핵심이며 후반부 작업인 물리적 그리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캔버스에 임의로 배치된 조각 이미지들을 좌표 삼아 그 이미지의 표현 방식을 그대로 그리며 증폭시켜 자라나게 하고(증식), 유사, 대비, 연결, 레이어 형성 등의 방식으로 다른 조각 이미지들과 서로 관계 맺게 하면서 다층적인 디지털 성좌를 구축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작가인 자신조차 예상치 못한 하나의 회화적 갤럭시가 탄생한다. 
     
    암시: 조각 이미지의 감각
    우태경이 캔버스에 흩뿌려놓은 작은 조각 이미지는 마치 별빛과 같다. 우주는 행성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그 행성들이 반사하거나 뿜어내는 빛이다. 바로 별빛. 그래서 그 별빛만으로는 그 행성을 알 수 없다. 별빛은 우주에 있는 그 행성을 암시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작가의 캔버스에 배치된 조각 이미지로는 그 조각 이미지의 전체가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빛들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듯, 작가는 다양한 조각 이미지들의 특성이 드러나도록 그리고, 그 부분 이미지들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추상적 형상을 만든다. 그런데 이렇게 완성한 작업은 새롭지만, 그리 낯설지 않다. 이는 작가가 수집한 이미지가 우리에게 익숙한 인터넷 속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서사는 거세되었지만, 그 분위기는 그 자리에 남아 서사를 암시하며 우리의 무의식적 감각을 깨우는 것이다.
    작가가 디지털 이미지를 수집하여 캔버스에 프린트하고 그것을 좌표 삼아 그리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기생하는 작업(Parasitic painting)’에서부터다(2012~2014). 이 작업은 자신의 스마트폰 안에 저장된 일상적인 이미지들을 조각내어 캔버스에 임의로 배치하고 그린 작업이었다. 이러한 작업에 그가 “기생”이란 단어를 붙인 것은 이 작업이 “주어진 정보(조각 이미지)를 따라 확장하고 증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작업노트). 한마디로 조각 이미지에 기생하는 작업이란 의미다. 이후 작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해시태그(hashtag, #)”의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캔버스에 배치하고 그 이미지를 기초로 물리적 그림을 그리는 ‘꼬리풍경(Tail Landscape)’ 작업을 진행했다(2015~2017). 이 작업은 인스타그램의 이미지에 달린 해시태그를 타고 이동해서 이미지를 수집하고, 그 이미지에 달린 다른 해시태그를 타고 다른 이미지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 해시태그를 타고 일관성 없이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그것을 기초로 물리적 그림을 그린 작업이다. ‘꼬리풍경’ 작업은 작가의 스마트폰 속에 저장된 이미지를 사용했던 초기 작업에서 벗어나 집단 무의식(칼 융)과 같은 인터넷 공간, 특히 취향과 문화를 공유하는 SNS에서 이미지를 끌어냄으로써, 기시감이나 보편적 정서를 더욱더 강하게 느끼게 했다. 작가의 작업이 낯설지 않은 것은 이처럼 작품 안에 느슨한 인터넷 공동체가 공유하는 감각이 스며 있는 조각 이미지들과 그 이미지들에서 증식한 표현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어서다. 설사 조각 이미지일지라도 그 이미지가 지닌 본질적인 느낌이 남아 있기에 이 이미지들에서 증식한 화면은 조각나기 전의 원본 이미지들을 암시한다.
     
    ‘꼬리풍경’ 작업 이후 작가는 ‘drawing’으로 검색된 이미지를 수집하여 작업한 ‘드로잉들의 그림(Painting of drawings)’ 작업을 선보였다(2018~2020). 이전 작업이 사진의 사실성에서 출발했다면, 이 작업은 그림 이미지(드로잉)에서 출발함으로써 회화적 감수성을 더욱더 충만하게 드러냈다.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여행을 준비하면서 온라인에 존재하는 여행지의 사진을 수집하여 작업한 ‘풍경화(Landscape painting)’ 작업도 진행했다(2016~2019). 이러한 작업들은 ‘꼬리풍경’에서 보였던 일관성 없는 이미지 수집에서 특정 목적을 가진 이미지 수집으로 그 방식이 변했음을 알려준다. 작업 방식이 다른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로잉들의 그림’ 작업 이후에도 그저 의식의 흐름을 따라 떠오르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작품의 제목을 붙임으로써—<선들의 휘날림은 표류하는 것처럼 불안하게 느껴졌다>, <사신으로 변신하는 투명한 티라노의 이글거림>, <표범의 기억 저편 에네르기>, <빨간 심장 선율 위에 부서지는 별빛항해> 등— ‘꼬리풍경’의 특성을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유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태경은 최근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기생하고 영향을 받는” 특성뿐만 아니라, 가능성 있고, 잠재적 능력을 지닌 특성을 동시에 의미하기 위해 ‘기생하는(parasitic)’과 ‘잠재적인(potential)’의 앞글자를 딴 ‘P painting’ 작업을 하고 있으며(2021~), 유사한 맥락에서 유화, 과슈, 목탄, 색연필 등 그림 재료를 키워드로 검색·수집하여 작업한 연작을 진행하고 있다(2022). 또한, 디지털 이미지의 배치가 같은 두 개의 캔버스를 각각 다르게 물리적으로 그린 ‘Twins’ 작업(2020~)도 하고 있다(<핑크빛 산맥에 기대어 뒤엉키는 것들>, <노을바다 위 까마귀가 여인에게 날아오다>, <활의 바람으로부터 물결 속의 잎사귀까지>, <푸르른 광명 속 아이리스> 등). 작가의 물리적 그림 그리기가 임의적이고 즉흥적이기에 이 쌍둥이 작업은 그 시작이 같을지라도, 다른 결과물을 불러온다. 그런가 하면, 웹툰의 조각 이미지로 작업한 ‘Series’ 작업(2021~)도 진행 중이다( 연작, , , , , ). 이 작업은 하나의 웹툰 연재물에서 추출한 이미지나 알고리즘으로 추천받은 웹툰들의 이미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집한 웹툰 조각 이미지들을 기초로 한 작업이다. 가장 흥미로운 작업은 ‘Twins’와 ’Series’의 형식을 결합하고, 디지털과 유화의 작업을 동시에 드러내는 /(2022)이다. 이 작업은 ‘Twins’처럼 동일한 두 개의 웹툰 조각 이미지들의 배치에서 시작하는 쌍둥이 작업으로, 독특한 부분은 하나는 유화로(), 다른 하나는 디지털(클립스튜디오 프로그램)로() 그렸다는 점이다. 우태경의 작업은 디지털과 실재가 교차하는 것이 큰 특징인데, 이 쌍둥이 작업은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과: 조각 이미지의 증폭과 증식, 관계 맺기
    조각 이미지의 증식은 우태경 작업이 회화적 갤럭시로 완성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백색의 디지털 갤럭시는 물리적 표현의 증폭과 증식을 통해 비로소 백색이 사라진, 회화로 가득한 은하가 된다. 여기서 작가의 표현은 무척 유동적이다. 그는 조각 이미지의 형식과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물리적으로 증폭시키고 확장한다. 조각 이미지에 ‘기생’하는 물리적 표현으로 화면을 전염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작가가 지닌 개성적인 표현방식을 고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작업은 어떤 특성에 정착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여기저기를 떠도는 개성 없는 작업인가? 전혀 아니다. 디지털 이미지 수집과 조각 이미지의 임의적 배치가 작가의 작업에 독특한 느낌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를 엮어가는 물리적 표현 과정에서도 작가만의 표현적 특성이 묻어난다. 작가는 조각 이미지에 자신의 표현 방식을 의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각 이미지는 작가와 무관하지 않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이미지를 선별해 수집할 때도, 수집된 이미지를 조각내 그 조각 이미지 중 프린트할 이미지를 선택할 때도, 그렇게 선택한 조각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배치할 때도, 결코 완벽히 임의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선별과 배치 과정에 작가의 취향과 시각적 구성력 등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조각 이미지들을 증폭하고 증식하는 과정에서도 작가의 표현 습관과 좋아하는 분위기, 레이어의 겹침, 시각적 구성력이 순간순간 개입한다. 이렇게 작업 과정에서 작가의 숨결이 조금씩 스며든다. 따라서 작가가 조각 이미지에 맞춰 물리적 표현을 행하더라도, 이 작업들이 작가만의 회화적 갤럭시를 구축하게 된다.
     
    특히 눈여겨볼 지점은 조각 이미지를 증폭하고 증식하는 표현들 속에 어떤 초과가 있다는 점이다. 조각 이미지의 증식은 단순히 증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인접한 다른 조각 이미지와의 관계 맺기로 나아간다. 이러한 관계 맺음은 조각 이미지에 내재된 의미를 초과한다. 별들이 이어졌을 때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듯, 이미지의 증폭과 증식은 이미지들을 묶고, 레이어를 만들고, 사건을 발생시키며 새로운 시각적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인터넷 공동체가 공유했던 익숙한 느낌은 이러한 초과를 통해 디지털과 실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추상적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태경의 작업은 언제나 위험하고 의문으로 가득하다.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작업노트). 그래서 그의 작업은 늘 진행형이다.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우태경의 작업을 보며, 자기 방식대로 새로운 성좌를 그을 수 있다. 그의 작업은 하나의 은하다. 이것들이 모여 우태경의 우주를 이룬다. 지금도 그 우주는 계속 생성되고 있다.
     
    개인전 <네모와 네모 사이>, 갤러리 조선,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