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선방문: 정정주

28 March - 10 Ma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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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우리의 눈과 비디오카메라의 렌즈를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가 하루동안에 육안을 통해서 보는 것은 약 16시간에 걸쳐서 비디오카메라를 작동시키는 것에 비교될 수 있다. PAL방식 비디오의 프레임 수가 초당 25장의 그림으로 환산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하루에 약 1.440.000장의 그림을 본다고 할 수 있으며 그 그림들은 우리의 뇌 속에 입력되고 저장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저장된 자료들은 어느 순간 기억이라는 특별한 기능에 의해 우리 눈 앞에 다시 끄집어 내어진다. 하지만 우리의 뇌속에 이 모든 자료들이 저장되어 남아 있지는 않는것 같다. 특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록 기억할 수 있는 양이 적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 살 때의 일부터 기억해낼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기억들마저도 단편적인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그리고 기억하는 일체의 과정속에는 무의식적인 선택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의 실험을 해보면: 당신은 지금 아무것도 없는 흰벽앞에 서있다. 그리고 당신의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해 서서히 돌려본다. 당신의 눈동자가 순간순간 멈춰서서 그 멈춰선 지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짧은 순간들에도 우리의 눈과 두뇌는 자동적인 선택의 과정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내 작품들 속에서 내 눈은 작은 감시카메라로 그리고 눈의 움직임은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대치되어 있다. 앞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눈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멈춰서고 그 멈춰선 지점에 무의식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그에 비해 카메라는, 만약 기계적인 마찰과 같은 외부의 요인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다면 모터의 회전속도 및 방향에 따라 끊어짐 없이 움직임을 계속할 것이다. 
 
 
내 작업에서의 카메라의 움직임 
 
작품 “거실”은 내가 지금 생활하는 거실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다. 카메라는 넓은 창문과 유리문이 있는 모델 내부 공간의 한구석에 놓여졌고 120도의 범위 안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반복해서 회전한다. 학생기숙사를 모델로 만든 “샤우하우스”는 다섯 개의 독립된 생활공간으로 이루어진 한 학생 기숙사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각각의 생활공간안에 설치된 카메라들은 창문을 향해서 끊임없이 다가오고 멀어지고 반복한다. 카메라는 모델의 내부공간을 찍고 창문을 통해 모델이 놓여진 외부공간과 그 공간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찍는다. 바깥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문을 열고 들어와 바깥공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혹은 작품에 관심을 보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모델의 창문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모델의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렇게 카메라를 통해 찍혀진 그림들은 그 모델들의 옆이나 아래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서 모델바깥의 사람들에게 다시 보여진다. 사람들은 화면을 통해 나타난, 모델내부공간의 크기에 비해 거대해 보이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흥미로워 한다.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그림들은 25분의 1초간격으로 모니터상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 그들의 두뇌에 저장되어지기도 한다. 
 
빈공간에 관한 느낌들
 
작품 속의 공간들은 내가 지금 생활하고 있거나 한 번쯤은 들어가 본 공간들을 모델로 만든 것이다. 모델공간의 내부는 텅비어있다. 나는 책상이나 책장, 옷장등과 같은 가구들로 가득찬 공간에서보다 비어있는 공간에서 더욱 많은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사간 후 깨끗하게 비워진 방들, 새주인을 기다리는 작은 상점건물들, 텅빈 체육관 그리고 예전에 호텔의 일부로 사용되었을법한 긴 복도와 창문이 있는 작은 방들... 이렇게 비워진 공간에 들어서면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공간자체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다. 벽과 천정, 창문과 출입문들의 크기와 위치에 의해 각각의 공간들은 스스로의 특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들은 그 공간들을 세포와도 같은 ‘유기적인’ 생명체로 보이게 한다. 이들은 낮동안 창문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고 밤이 되면 빛을 다시 내어보낸다. 또 외부로부터 시선을 받아들이고 밖으로 내어보내기도 한다. 
 
 
마침글 
 
내 작품속에서 건축물들의 공간은 실재공간과, 그리고 모델내부에서 기계적인 움직임을 계속하는 카메라는 실재 공간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비교되어진다. 또한 카메라의 시선은 그 사람들의 시선들과 비교되어진다. 모델건물들의 공간, 카메라 그리고 카메라들의 시선은 기계적으로 변환된 실재세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형은 실재 공간의 사람들에게 관찰되어지기도 하지만, 유기적인 모형의 한 기관으로서 기능하는 카메라를 통해 실재공간속의 사람들을 관찰 하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에 의해 관찰된 장면들은 다시금 실재공간속의 사람들에게 끄집어내어진다. 이 과정들을 통해 나는 작품과 작품을 둘러싼, 주체와 객체사이에서 벌어지는 - “관찰” 하고 “관찰되어지는” - 끝없는 순환의 모습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