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abrau: 시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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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시나브로> 25. 5. 8. ~7. 8.
글: 이민주(미술비평)
몸이 사라지고 난 후 남은 부스러기로부터 전시를 출발한다. 요한한과 아슈라프 툴룹의 2인전으로 꾸려진 이번 전시는, 두 작가가 지난 2017년, 2019년, 2023년 총 세 차례 협업해온 퍼포먼스 작업으로부터 파생된 이미지들을 불러왔다. 약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쌓아온 이들이 과거의 이미지를 매개로 서울에서 다시 만나는 까닭은, 오늘날 협업의 구조와 의미를 찾고, 퍼포먼스라는 형식 안에서 몸이 위치하는 공간을 사유하기 위함이다. 달리 말해서 전시는 과거의 이미지를 거울 삼아 개인이 타인과 만나는 방식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몸이 타인의 몸을 마주하는 공간에 관해 실험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몸’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오늘의 몸이라 함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몸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인가? 요한한과 아슈라프 툴룹은 신체 감각, 디지털 환경, 기술과 인간의 관계 및 변화와 같은 주제에 천착해왔다. 하나의 매체에 고립되지 않지만, 퍼포먼스와 회화를 주로 이미지의 매체로 삼는 까닭에 두 작가는 공간에서의 몸과 평면에서의 신체적 운동성을 주로 형식의 조건으로 삼아왔다. 특히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진행했던 <개방된 화면을 위한 투영>(Reflections (0 paths 0) for an open screen)의 경우처럼, 주요 작업 방식은 참여자와 퍼포머 등 다수의 신체를 준비된 공간에 초대하고 정해 놓은 스코어와 미디어 장치, 공간 연출에 따라 운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고정된 규칙과 장치로 매개된 낯선 신체들이 만나는 공간에는 변수가 작동한다. 이 변수는 작품을 끊임없이 새롭게 활성화 시키며, 이는 작가들로 하여금 당대 기술 환경에서 몸과 몸의 만남, 그리고 신체가 놓이는 공간에 관한 다양한 질문들을 안겨주었다. 이처럼 두 작가는 나날이 가속하는 기술의 변화 앞에 놓인 몸의 좌표와 위상에 관해 연구하고, 어제와 조금씩 달라진 오늘의 몸을 이야기하고 있다.
총 두 개의 층(B1, 2F)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기존 퍼포먼스 작업에서 등장했던 물리적인 신체를 삭제하고 오브제, 조각, 영상, 드로잉, 회화 등 이미지의 형태로 사라진 몸의 흔적을 추적한다. 지하에서는 지난 수년간 이어진 협업 프로젝트가 각자에게 남긴 질문들을 각자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2층에서는 과거의 협업 퍼포먼스 아카이브 영상과 ‘잿더미’가 함께 전시된다. 상실 이후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잿더미와 과거의 이미지가 함께 놓이는 방식은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암시한다. 잿더미 위로 3D 프린트 된 오브제가 띄엄띄엄 놓여있다. 관객은 이 작은 오브제의 형상을 알아보기 위해 검은 흔적을 가로질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잿더미는 관객 신체의 방향과 발걸음을 통제하는 일종의 스코어처럼 기능한다. 오브제로 가까이 다가서면, 관객은 그것이 하나의 ‘원형극장’(Amphitheater)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프로시니엄 극장과 달리, 원형극장은 관객이 중앙 무대를 둘러싸는 형식이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 위의 퍼포머 너머에 자리하는 관객과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툴룹은 잿더미라는 고정할 수 없는 물질 위에 극장을 세움으로써 무대와 객석, 퍼포머와 관객 등과 같은 견고하게 이분화 된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힘은 언제나 몸을 경유해서 행사된다. 몸과 권력이 교차하는 원형극장의 상징적 이미지가 퍼포먼스 아카이브 이미지와 함께 병렬하면서, 몸이 사라지고 난 이후 힘이 수행되는 방식을 질문하고 있다. 지하 1층에는 두 작가의 개별 작업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고 있다. 가장 특기할 것은 전 층을 아울러 몸을 계속해서 삭제하는 방식으로 ‘몸’을 전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한한과 툴룹은 몸을 물질적인 차원으로 접근하기보다 하나의 이미지로서 신체, 즉 ‘결핍’을 통해 형상화 되는 무의식적 주체로서 소환한다. 전시에는 퍼포머도, 퍼포먼스도 없지만 관객의 존재로부터 상상되는 몸적 주체가 자리하는 것이다.
<투영된 흔적>(2024), <메타모포시스>(2025)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요한한은 동물의 외피를 가져와 껍데기와 흔적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사라진 몸을 전시하고, 툴룹은 (2024)와 <Egregor(III)>(2024) 같은 수채화의 유동적이고 가냘픈 이미지를 통해 몸의 실루엣과 윤곽, 그리고 표면을 그려낸다. 특히 요한한의 신작 중 하나인 <해석자(저 세계의 중심으로부터)>(2025)는 AI(Artificial Intelligence)를 한 명의 안무가로 전시에 세운다. 프롬프트에 안무가로서 입력된 AI는 그가 위치한 (가상의) 무대에서 보이는 사물과 움직임에 관해 묘사한다. LED 불빛, 뿌연 시야, 환풍기 소리, 반사되는 실루엣…. 작가와 AI가 나눈 수차례의 대화와 미션을 통해 하나의 무대가 완성된다. 요한한은 이 무대를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로 가시화하면서 몸 없이 말만 남은 세계의 풍경을 그려본다.
요한한의 작품이 텍스트로 하나의 상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면, 툴룹은 텍스트 조차 지워진 텅 빈 이미지를 제시한다. 그의 <엔드 크레딧>(2011)은 영화 제작에 참여한 모든 스텝의 이름을 소개하는 ‘엔드 크레딧’ 장면에서 이름의 자리를 지운다. ‘크레딧’의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신세 진 빚을 갚는다는 의미를 가진 이 검은 화면은 이미지 뒤에 가려진 수많은 인물의 노동을 노출시키는 시간이다. 하지만 넷플릭스, 왓챠 등 다양한 OTT 서비스가 영화 산업에 들어오면서 ‘오프닝 건너뛰기’, ‘다음편 이어보기’ 등 영화를 둘러싼 컨텍스트(context)가 점점 비가시화되고 있다. ‘이름’이 누군가 나를 부르기 위해 필요한 언어라고 할 때, 이는 나라는 한 인물이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리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인 장 안에서 나를 타인과 구분하는 조건으로서 이름에 위상을 부여할 수 있다면, 툴룹은 시장과 자본에 가려진 이름들이 (지워진 채) 출현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
당대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의 신체는 점점 파편화된다. 가장 쉬운 예로 플랫폼 노동을 떠올려보라. 라이더의 몸은 지도에 찍힌 점으로 환원되고, 우리의 손과 눈은 알고리즘이 원하는 클릭과 응시로 축소된다. ‘전체’로서의 몸은 사라지고 자본의 시스템 안에서 쓸모를 증빙하는 ‘기능’적 조각으로서 몸의 부위가 남는다. 디지털 플랫폼은 눈에 드러나는 모든 것을 추적하고 기록하지만 그 기록에 인간의 신체가 감각하는 피로, 감정, 긴장, 그리고 불안의 정동을 새겨지지 않는다. 오늘의 몸은 데이터로서 환원 가능한 대상인 것이다. 이것이 가장 문제적이게 되는 지점은, 연결되어 있던 신체들이 만든 공동성의 차원, 즉 공동체의 상실에 있다. 과거에는 몸과 몸이 서로 만나 부딪히고 노동하는 장소에서 연대하고 저항하고 투쟁했다. 그러나 오늘날 몸의 장소는 모두 개별화되고 고립된 채 작동한다. 말하자면 공동의 영역을 구축하는 관계의 기반이자 정치의 조건으로서 몸이 오늘의 플랫폼 자본 논리 안에서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한한과 툴룹은 이러한 당대의 기술 환경을 단순히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인간의 가속하는 기술의 조건을 거스를 수 없다면, 바로 그 기술의 토대 위에서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공동체를 질문하고, 다른 존재의 방식으로 구조화되는 신체와 행위의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두 작가가 설계한 몸과 몸의 만남에서부터 끊임없이 상실을 유예하는 퍼포먼스 아카이브 기록까지 몸을 둘러싼 변화된 양상을 살피고, 디지털 플랫폼 경제 안에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변환되어 가는 감각을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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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한은 2019년 파리 세르지 국립고등미술학교 국가조형예술학위를 취득, 2016년 파리 1대학 판테옹 소르본 조형예술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요한한은 디지털 환경과 스마트 체제로 인한 몸의 거시적 변화를 체감하며 근원적 주체성에 대한 고찰적 지점을 피부, 몸짓, 촉각적 감각과 같은 신체적 요소에 주목한다. 특히 (동물)외피와 같은 전통적 소재를 기술적 형태와 결합하여 신체성과 조형성을 탐구하며, 이를 퍼포먼스 및 다원적 형식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공명과 감각을 주요 개념으로 삼아 신체, 공간, 소리, 물질, 시간, 흔적 사이의 관계를 조형적으로 표현한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엮는 자》(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2025), 《포ː룸 -또 다른 시간을 위한 會》(수림큐브, 서울, 2023), 《몸살풀이》(Parliament gallery, 파리, 2022), 《공명의 원리》(아트스페이스 보안, 서울, 2021), 《공명동작》(갤러리 조선, 서울, 2019) 등이 있으며, 단체 기획전및 퍼포먼스 프로젝트로 《MMCA 청주 다원예술 릴레이 퍼포먼스》(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3), 《젊은모색》(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1), 《하나의 점 모든장소》(금호미술관, 서울, 2021), 《미디어 심포니》(청주시립미술관, 청주, 2020), 《Thread volume II-또 다른동작을 위한 플로어》(문래예술공장, 서울, 2019), 《Thread》(퐁피두현대미술관 Museum Live #5, 파리, 2017), 《Nuit Blanche》(바질릭 쌩 클로틸드 성당, 파리, 2016) 등에서 작품을 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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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hraf Touloub(아슈라프 툴룹)은 1986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나 현재 파리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전통의 상징적 힘과 글로벌화된 세계 속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 간의 연결성을 탐구다. 그는 기술 도구들이 지닌 입문적이면서도 몰입적인 성격에 주목하며, 이러한 특성이 원초적 시간의 재현 전략과 역설적으로 맞닿아 있음을 고찰한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Metamorphosis Treatise》(Parliament Gallery, 파리, 2024), 《Assabīya》(Galeria Plan B, 베를린, 2022), 《Vies parallèles》(Blank Projects, 케이프타운, 2022), 《Les Arrivées》(CAC Passerelle, 브레스트, 2021), 《Achraf Touloub》(Villa Medici, 로마, 2020), 《Discord Venue》(Baronian Xippas, 브뤼셀, 2020) 등이 있으며, 단체전으로는 샤토 드 로슈슈아르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세리냥 현대미술관(MRAC), 로잔 미술관(MCBA), 바르질 아트 파운데이션(샤르자), 퐁피두 센터(파리), 팔라조 모체니고 미술관(베니스), 팔레 드 도쿄(파리) 등이 있다.
그는 또한 2016년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인도 코치), 2017년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2018년 발트 트리엔날레 13(에스토니아 탈린)에 초청되어 전시를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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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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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Resonance
요한한 29 November - 19 December 2019전시는 2 회의 퍼포먼스와 함께 작가가 직접 제작한 조형작품, 사운드로 구성되며, 퍼포먼스와 그것의 흔적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황과 의미에 주목한다. < 공명동작 (Inside Resonance)> 이라는 제목은 퍼포먼스의 기본 단위가 되는 “동작(動作)”... -
As the Sharp Narrative Fades, A Revealing Map Emerges (PART 2)
명료한 서술을 지우니 또다른 지도가 드러났다. (파트2) 5 December 2024 - 25 Januar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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