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Jiyeon LEE , Kyungeun SON

1 - 25 July 2026
  • 두더지 Talpidae: 정박한 배 안에 구멍을 내고 봉합하는 놀이

    글:하지민

    그리스 신화 속 테세우스의배에얽힌역설은[1]대개어떤배가원본인가라는동일성의문제를둘러싼사고실험으로읽힌다. 이때헌널빤지를뜯어내고튼튼한새목재를덧대어붙여배를 보수하는 일은 배의 본래 기능, 즉 항해의 가능성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다. 항해는 근대적 주체를 사유하는 오래된 은유였고, 거친 파도에 기꺼이 손을 내미는 위반의 열정은 언제나 권력과 제국의 욕망을 동반했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낡은 것을 새롭고 튼튼한 것으로 교체하는 것은 사람과 사물을 가릴 것 없이 만연하다.


    어떤 것이 원본의 배인가 하는 논쟁을 뒤로하고, 배를 수리하는 사람, 이를테면 목수의 행위에 주목해보자. 오랜 항해 끝에 배의 표면이 닳고 해져 보수가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어떤 크기와 두께의 목재를 선택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어붙일 것인지는 전적으로 목수에게 달려있다. 그런데 그 목수가 고른 목재가 충분히 단단하지 않거나, 목재라고 착각한 다른 어떤 것이었다면, 그래서 더 이상 항해할 수 없다면 그 배를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시 《두더지》는 배의 표면을 뜯어내고 다른 지지체를 덧대는, 원본의 신화에서 점차 멀어지는 목수의 행위를 두 작가의 작업 과정과 연결해본다. 이지연은 기억으로 구성된 원본의 경험을 더듬는 과정 안에서 돌발하는 것들을 회화에 그대로 집적시키고, 원본은 자신의 몸이 겪은 방과 연관된다. 손경은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조건 아래 조각 제작의 행위자를 대체하거나, 캐스팅의 틀이 되는 몰드를 활용해 불완전한 복제를 수행한다. 작업 과정에서 두 작가 앞에 놓인 것은 원본으로부터 계속해서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지연은 계속해서 방을 그렸다. 여기서 ‘방’은 작가가 눈으로 지각하는 분리된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무언가다. 작가는 회화를 통해 몸으로 경험한 '원본'을 더듬는다. 자신이 경험한 방이 원본이라면, 이를 구성하는 총체적인 요소들(카펫의 질감, 벽지의 온도, 작게 난 창의 기울기 등)을 기억에 의존하여 화면 안에 덧입히고, 분절한다. 그 기억은 자의적이고, 그렇기에 재현의 관점에서 불완전해보인다. 그러나 그리기를 통해 붓질과 색이 얹어지며 중첩되는 어긋남은 오히려 기억의 상태와 가장 가깝다. 그리고 더 이상 타자일 수 없는 이 생생한 장소가 또 다른 몸(캔버스)이 되어 눈앞에 놓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타본 적 없는 배를 그리려 한다. 작가에게 배의 경험, 즉 원본의 기억 자체가 부재하기에, 배가 되려던 형상은 돌발하는 붓질에 의해 언제든 배가 아니어도 되는 것이 된다. 전시장의 큰 벽면을 차지하는 그림 〈Dug-out〉(2026)은 배의 외벽에서 시작되었지만 집 앞 아파트 재건축 현장의 표면이 되기도 하고, 어느 날 밤에 통과한 듯한 터널이 되기도 한다. 사실 그것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가, 그렇게 수많은 공간을 돌고 돌아 다시 방 안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배의 형상을 쫓으려던 시도는 방이 되어버렸고, 방의 경험에서 시작된 형상은 다시 배가 되었다. 너무나 가깝고 내밀한, 이 방안에 표류하기를 자처하는 일은 표면적으로는 정체를 동반할 것만 같다. 그러나 고요한 정체 속에서 작가의 경험과 기억을 포착하려는 시도는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그리기의 행위를 충동한다.
    전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캐노피는 돛〉(2026)은 작가가 작업실에 쓰고 남은 캔버스 조각과 가벼운 천 소재를 엮어 설치한 것이다. 이 작업은 공간의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없도록 시각적 제약을 만드는 막이다. 이러한 제약은 전시장 안쪽에 위치한 그림 〈Dug-out〉을 바라보는 방식과 특히 맞물려 있으며, 관객이 막을 넘어설 때마다 동선을 따라 미세한 바람이 일어난다. 그림의 전체를 보기 위해 막 너머의 시야를 확보하는 관객의 움직임은 바람을 동반하는 항해에서의 위반[2]과도 닮아 있다.



    [1] 테세우스가 젊은이들과 함께 항해하여 무사히 돌아온 삼십노(三十櫓) 갤리선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아테네 사람들에 의해 보존되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은 판자를 떼어냈고 새롭고 튼튼한 판자로 교체했는데, 이로 인해 배는 철학자들에게 변화와 동일성에 관한 논쟁의 상징적인 사례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배가 원래와 같은 배라 주장하였고, 어떤 이들은 다른 배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세우스편 Life of Theseus23 1

    [2] 위반에의 열정은 항해에 불가피한 바람에 비교되는데, 바람은 배가 삶의 바다를 횡단하도록 하는 동시에 위험천만한 모래톱으로 올려놓기도 한다. - 『난파선과 구경꾼』 한스블루멘베르크

     

    손경은은 조각과 퍼포먼스를 오가며 작업해왔다. 퍼포먼스의 프롭prop[1]으로 기능하는 조각을 만들기도 하고, 조각을 먼저 제작한 뒤 일시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조각에 자신의 몸을 개입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기에 작가는 오롯이 조각으로 놓인 작업 안에서도, 조각의 제작 과정에서 자신의 몸이 남긴 움직임을 하나의 스코어score로 상상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서울에 부재한 자신의 몸을 대신해 동료 작가 신동헌과 송민진을 조각 〈Shepherd〉(2026)와 〈머리구멍바위〉(2026)의 제작자로 상정한다. 본인과 동료의 몸을 프랑크푸르트와 서울, 두 개의 항에 위치시킨 채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동료들에게 조각 제작의 지시문을 전달하고 양쪽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두 조각은 제작자 각자의 제스처, 국가마다 상이한 재료의 규격 등에 의해 미세하게 서로 달라진다. 지시문을 통해 만들어진 작업은 원본으로 상정되는 작가의 작업과 오차를 만들어낸다. 관객 뿐만 아니라 작가 또한 독일과 한국에 자신의 몸을 동시에 놓을 수 없기에, 그 오차를 직접 목격하지 못한다. 이는 원본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원본의 권위는 흔들린다. 작가는 이러한 취약함을 조건으로 삼아, 조각의 제작과정과 그 안에서 파생되는 몸의 제스처를 스코어로 상상하여 이를 다시 퍼포먼스[2]로 연결한다.
    한편 전시장 바닥에 낮게 깔린 조각들은 조각의 복제 가능성과 맞닿아 있는 몰드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다. 〈Shepherd〉는 버려진 바이크 타이어를 본뜬 라텍스 몰드를 제작하고, 이 몰드에 석고를 채워 수십 개의 막대를 복제하여 무덤처럼 쌓아 올린 것이다. 그러나 막대들은 제작 과정에서 구겨지고 엉키며 온전한 복제에 실패한다. 각각의 막대는 서로 다른 개체가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지고 거대한 꼬리 같은 모습을 이룬다. 이때 조각의 몸통 위를 가르는 바이크 타이어 안에는 석고가 채워져 있다. 이 형상은 마치 타이어 자체가 몰드인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제 라텍스로 제작된 바이크의 몰드는 〈Slinky〉(2026)의 재료가 되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출현한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그림 〈창 난 마당〉(2026)과 조각 〈머리구멍바위〉는 구멍, 머리통, 마당을 차례로 떠오르게 하는 둥근 원형(圓形)을 띠고 있다. 두 원형을 나란히 보고 있으면, 아동기 반복강박의 시초가 되는 포르트-다Fort/da[3] 놀이에서 아이의 손에 쥐어졌다가 다시 멀어지는 둥근 실패(絲牌)의 움직임이 연상된다. 실패는 아이에게 어머니의 대체물로서, 손에 쥐어질 때는 부재를 유예하지만, 곁에서 멀어지면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다시 멀어지기에 고통스러운 이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두 작가가 원본의 부재를 견디며 반복을 수행하는 것과 닮아 있다. 실패가 다시금 손안에 잡혀올 때, 그것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두 작가는 반복된 붓질로 공간에 관한 기억을 화면 안에 남기거나, 대리자의 손길을 거쳐 복제되는 조각 제작의 제스처를 스코어로 붙잡는다. 이러한 수행은 낡은 것을 보수하여 여전히 항해할 수 있는 배로 고쳐 쓰려는 것이 아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찬란한 이동성을 덮어두고, 배 안으로 들어가 그 몸을 뜯어 고치는 행위의 시간을 끝없이 연장하는 것이다. 그 연장의 시간 속에 배의 몸은 더 이상 배가 아니어도 될 만큼 철저히 부서지고 구멍 나며, 기꺼이 다른 몸을 갖도록 변형된다. 이후 그 몸이 더 이상 물에 뜨지 않더라도, 그것이 배였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1] 연극,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에서 사용되는 휴대 가능한 소품(무대 소품)

    [2] 두더지 전시의 연계 퍼포먼스로 프랑트푸르트의 트리아논Trianon 빌딩과 서울의 갤러리조선 전시장 내부에서 각각 진행된다. 손경은과 동료작가 신동헌은 동시에 각자의 공간에서 Shepherd 조각의 끝부분을 만들고 사람의 움직임은 서로의 공간 안에 동시 송출된다.

    7 12 독일 11:00, 한국 18:00

    [3] 따라서 실패는 속으로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그는 인상적인 <-->소리를 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실을 잡아당겨 실패를 침대 밖으로 끌어냈고 그것이 다시 나타나자 즐거운 da(거기에)라고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라짐Fort 돌아옴Da이라는 완벽한 놀이였다. - 쾌락 원칙을 넘어서 지크문트 프로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