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업은 물론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매번 새로움을 선사하고 계신데요. 대표적으로 ‘움짤’을 기반으로 움직임을 회화로 옮겨오는 작업들이 《취향가옥(2024, 디뮤지엄)》에서는 고급스러운 주거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었고, 《캔버스에 바퀴를 달고싶어(2025, 시청각)》에서는 캐릭터에 움직임이라는 축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 《Silly Symphony》에서는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길게 펼쳐내는 방식으로 작업이 확장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같은 ‘움직이는 이미지’를 다루고 있지만, 이전 작업과 비교했을 때 이번 작업에서 작가님 스스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1. 반갑습니다. 꼽힌님. 이번 전시 《Silly Symphony》의 가장 큰 시작점은 하나의 자본적 제약이었습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큰 일을 당해 캔버스 틀을 사지 못하고 개인전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는데요. 저에게 주어진 에셋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우선 천에 바로 그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이가 이렇게 방대해질지는 모르고) 시작하게 된 이번 작업은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이었어요. 무엇을 그리는지는 다음 질문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게 되겠지만, 지금 나를 여기에 붙잡는 이야기가 끝이 없이 펼쳐지기를 바랐어요. 아주 긴 이야기, 한 몸으로는 담아낼 수 도 없는 것을 그리는 것이요. 그러다보니 단일 캔버스로 완결이 되는 이전 작업들과의 다른 지점은 저의 태도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하나의 완성을 위해 달려가는 목표지향적으로 작업을 그렸다면, 이번엔 끊임없는 이야기를 상상하며 계속 그려나갔어요. 완성을 생각하지 않고 달리는 그림은 저에게 또 다른 감각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세 걸음 물러나 그림을 바라보는 시간, 그림의 전체를 보기 위해 옥상이나 복도를 왔다갔다해야 하는 수고스러움 등등이 이번 작업에서 새롭게 느낀 큰 변화의 지점들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느끼며 작업했던 이번 작업은 저에게 단순히 하나의 그림 완성이 아닌 전체적인 시공간을 보고, 그것을 전시장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드는 것 또한 변화된 지점이었습니다.
Q2. 전시장에 들어와서 경험하는 첫 번째 감정은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귀엽고 경쾌한 분위기였는데요. 이번 작업의 모태가 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당대에는 대중적인 위안이나 환상으로 작동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오히려 그 낙관성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1930년대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들이 현재의 관객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다르게 읽히기를 기대하셨는지, 그리고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감각 (특히 귀여움과 동시에 느껴지는 어긋남이나 우울)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2.
놀이공원에 온 것 같다고 하시니 저의 의도가 성공한 것 같아 기쁩니다. 정확히는 놀이공원 어트랙션 대기줄에 화려히 꾸며진 어떠한 공간을 상상하며 전시를 꾸렸는데요. 왜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임하게 되잖아요. 그런 교차하는 마음을 관객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태가 된 애니메이션 또한 그래요. 저에게는 극적인 이야기, 대단한 거대 서사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이브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제가 주물러 보고 싶은 것이었고, 다시 흥얼거리고 싶은 멜로디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캐릭터들 간에 묘하게 어긋나는 설정에 대해 재밌게 느끼며 그렸어요. 암나무는 숫나무를 귀찮아하고, 숲 속 귀여움을 노래 하는 친구들은 마치 어딘가에 중독이 된 것처럼 나사가 하나 빠져보이고 그런 지점들이요. 그것들은 단순히 봤을 때는 귀여움으로 끝날 수 있지만, 씹을수록 달디 단 단물이 빠지는 껌처럼 그런 입에 남는 질겅한 맛을 관객도 함께 느끼길 바랐어요. 저는 자주 어린시절을 그리워 하지만 그건 그냥 예쁜 포장지로 둘러 쌓인 혼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그런 귀여움과 어긋남, 알 수 없는 공허와 우울 또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고, 바라보아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Q3. 이번 작업에서는 7분 50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장면 단위로 나누기보다, 약 30미터에 달하는 롤 페인팅으로 하나의 흐름으로 펼쳐내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처럼 무빙 이미지를 길이로 긴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방식은 회화보다는 필사에 가까운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3개월 간 이러한 작업 과정을 통해 경험한 감각, 그리고 그 반복적인 행위가 작가님의 커리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A3.
음 1번 질문과 연결이 되는 답변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어떤 끝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시작한 것들은 저에게 새로운 것들을 쥐고 놓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전에 들었던 한 크리틱에서의 평이 생각 나는데요. “움직이는 것들을 그리신다는 것은 알겠는데… 더 잘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는 평을 받고 몇일, 아니 사실 몇년간 마음 앓이를 했습니다. 잘그리는 것은 뭘까. 내가 어디를 어떻게 더 매만져봐야하는 것일까 하구요. 근데, 이번 작업을 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사실이 있어요. “아! 나는 색칠공부 중이구나.” 하구요. 왜 어린아이가 색칠 공부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것이 꼭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면을 채우고 어떤 색을 고르는데만 원초적으로 집중하잖아요. 그것이 잘그려지고 못그려지는지는 그 이후의 문제이구요. 그런 아이 같은 태도로 3개월간 임하다보니 저에게 상념이나 더 잘 그려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보다는 깨끗한 마음만 남게 되더라구요. 이 부분을 이 색으로 채우니 즐겁다! 같은 단순한 마음들이요. 이런 깨달음이 저의 커리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저의 마음에는 아주 잘 맞았습니다. (마치 심리치료를 지 혼자 그림으로 풀어낸 느낌입니다 ^ㅇ^)
Q4. 작품의 형태와도 연결되는 질문인데요, 설치 방식이나 사운드 등 공간 전체를 통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전 개인전 «TURN, SWITCH, JUMP!»이 진행되었던 공간이지만, 이번 전시는 동선과 경험에 있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계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경험하길 바랐던 감각이나 리듬, 그리고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중요하게 두신 지점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A4.
우선 2022년에 이미 같은 공간에서의 개인전을 진행했기에 공간을 전혀 다르게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저에게 끊이지 않는 3-40m가량의 롤페인팅이 있다고 했을 때, 공간을 활용할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는데요. 그냥 천장에 행잉을 한다던가 벽에 붙여 걸어버린 다던지의 방법은 저에겐 너무 쉬운 방법 같아 보였습니다. 이 직전 개인전인 《캔버스에 바퀴를 달고싶어(2025, 시청각)》에서는 관람자의 동선을 제한하지 않고 전시를 했더니, 생각보다 자유롭지 않게 관람을 하는 것을 보고… 관객에게 미로를 만들어 주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그린 이야기 안에 들어와서 관객이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미로의 형태는 직선이 아닌 곡선이길 바랐구요. (저는 직선의 혹은 뾰족한 미감보다는 곡선과 둥글하고 망충한 미감을 선호합니다.) 곡선의 미로에서 관객이 이래 저래 다니며 살피는 이야기들이 어떤 부분은 가까이서 보게 만들고, 어떤 부분은 멀리서 보게 만드는 그런 시(각의)차(이)도 만들어 낼 수 있겠구나 까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구조물을 상상하게 되었고 여러 현실적인 논의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전시를 꾸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머리 속에 상상만 가능한 전시를 구체적으로 실현시켜 주신 설치 담당 황규진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네요.
Q5. 이번 작업에서도 매우 강력한 저작권을 가진 에셋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계신데요. 이러한 이미지가 점점 더 엄격하게 통제되는 환경 속에서, 작가님의 작업은 경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가노트에서 ‘이미지를 기억하고 변형하는 감각은 통제될 수 없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실제 작업을 진행하시면서 이러한 제약이나 긴장감을 어떻게 인식하고 계셨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혹은 작가님이 생각하는 이미지의 소유나 공유, 그리고 전유의 의미에 대해)
A5.
저는 현대 사회에서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필수이다. 라는 생각엔 절대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또한 제가 그리게 되는 여러가지 캐릭터들도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그것을 대량생산 해 상품화하지 않는다면 저의 창작물 또한 2차 창작물로 저작권의 보호를 다시 받는 다는 점도요. 제가 이번 전시에서 말하고 싶었던 점은 어쩌면 디즈니 사의 독점 저작권 같은 것입니다. 그런 말이 있지요.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면 S.O.S. 표시보다 미키마우스를 그리면 더 빨리 구조될 것이라구요. 그만큼 디즈니가 저작권에 엄격하다는 말일텐데요. 기업은 특정한 이미지를 소유할 수는 있지만, 그 이미지를 다시 기억하고 흥얼거리는 감각 까지는 소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1930년대 저화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저만의 흥얼거림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강하게 말하자면, 로렌스 레식의 책을 인용하는 작가노트 부분도 첨부할 수 있습니다.) 경계에서의 작업은 늘 위태롭고 알 수 없는 탐험 같지만 분명 새 길을 열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두가 쉬쉬하고 드러내지 않는 부분에 대해 우리는 모두 더 적극적으로 말하고 의견을 나눠야한다는 점에도 동의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Q5-2. 작가님의 의도대로, 전시를 다녀가신 분들의 공통된 코멘트 중 배경 음악이 몰입도를 높여준다는 후기가 많았습니다. 전시장에서 흐르는 음악과 메인 포스터를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하셨는데요. 작업에 있어 AI에 대한 관점이나 활용의 기준이 있다면 함께 듣고 싶습니다
A5-2.
ai를 활용한 포스터, 배경 음악은 저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것은 저는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주 손 쉬운 조수이자 동료 같은 것으로 생각하며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물론 잘 짜여진 프롬프트를 넣는 것, 그것을 기록해 두고 ai 활용을 숨기지 않는 것까지도 저에겐 활용의 기준이라 말 할 수 있겠어요. 배경음악에 관해 조금 더 살을 붙이자면, 전시 설치가 끝나고 파이널 체크 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시장이 너무 고요한 거에요. 원래 회화 전시란 조용한 것인데 저에게는 그 적막이 귀에 들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일주일이 남은 시점에 제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AI(SUNO)였습니다. 12번쯤 시도 했을 때, 이거다! 싶은 음악이 나왔고 그걸 사운드 아티스트인 윤재민 작가가 매만져 지금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관객들이 많이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메인 사운드가 전시장에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그림에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가 나오는 부분을 두 군데에 숨겨놓았습니다. 그런 디테일들은 또 모든 관객이 알아주지 않아도 저만 아는 재미 포인트인 것 같아요. 저에게 SUNO를 알려준 이연정 작가님, 사운드를 만져주신 윤재민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