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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video
Frieze Seoul 2024 C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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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lin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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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Jeong-ju
정정주는 빛을 작업의 소재로 삼는다. 독일 유학 시절, 작가의 방으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온 빛은 ‘마치 자신의 내부를 혀로 햝는 것’만 같은 은밀한 감각으로 남아있다. 이 경험은 작가로 하여금 빛이 선사하는 촉각적인 감각에 집중하도록 했다. 빛은 사물과 풍경을 매개하는 에너지로서 우리가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다. 이때 그는 빛을 통해 시각화 된 사물 혹은 풍경을 포착하기보다, 빛 자체를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빛의 형태를 구체화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초기 작업에서 구체화된다. <특정한 시간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나무 구조물로 바꾸기>(1998) 제목이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작업은 창 너머 공간으로 들어온 햇빛의 윤곽을 따라 구획된 나무 구조의 설치물이다. 햇빛을 가둔 이 구조물은 비어 있는 빛으로 채워진 공간의 부피와 밀도를 상상하게끔 유도한다.
하나의 물질로서 빛을 탐구하던 작가는 점차 빛과 공간의 관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특히 2005년부터 시작된 ‘시티스케이프’(Cityscape, 2005~2019) 연작에서는 빛이 사라지지 않는 ‘도시’ 공간을 관찰한다. 상하이 푸동의 건물군을 다룬 <젠다이 플라자>(Zendai Plaza, 2005)와 일산신도시 외곽의 <덕이동 로데오거리>(Deoki-dong Rodeo Street, 2005) 등 건축물의 모형공간을 만들어 전시 공간에 설치했다. 전시라는 가시적 영역에서 도시라는 폐쇄적이거나 혹은 환영적인 영역을 탐구하기 위함이다. 다양한 도시의 건물을 모델링한 것만 같은 조형물 안에 카메라가 설치된다. 카메라로 작품에 접근하는 관객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작품은 대상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 카메라의 시선을 교차하며 공간의 스케일을 뒤집는다.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거나 고정되지 않는 빛의 성질처럼, 그에게 도시는 물질적 실체를 가지거나 구체적인 대상이라기보다 일종의 상상적 이미지로 여겨진다. 특정한 위치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형상을 갖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빛이라는 물질을 재료로 도시의 비물질적 이미지를 건설하고 있다.
빛의 성질과 도시의 이미지를 겹쳐보려는 작가의 실험은 ‘응시의 도시’(City of Gaze, 2007~2020) 연작에서 심화된다. 재개발과 재건축의 대상으로 사라질 건물들로 이루어진 모형 도시와 카메라의 시선으로 투사된 영상 이미지 사이에서 ‘응시’의 문제를 다룬다. 내 눈앞에 놓인 사물과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내가 볼 수 없는 또 다른 시선에 관여하는 것이다. ‘응시의 도시’ 연작은 일본의 나고야, 중국 상하이, 한국의 서울에서 진행되었으며 도시 재개발의 문제를 사회, 정치, 문화가 매개된 시선으로 바라본다. 붙잡을 수 없는 빛의 성질은 특정한 국가의 사회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도시의 면면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개인의 고유성이 누락되는 도시 공간 속에서 익명화 된 시선을 관찰하며 시점을 특정할 수 없는 응시의 불안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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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주에게 도시는 규격화된 건축물과 사람들이 호응하며 만들어지는 공간이자 공동체다. ‘27개의 방’(27 Rooms, 2017~2024) 연작은 도시와 호흡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으며 도시 속 불안의 정서를 스펙타클화 한다. 27개의 금속 격자 안에는 아시아 도시 곳곳의 건축물 외관이 모니터 영상으로 출력되고 있다. 각기 다른 색과 빛, 표면과 질감을 가진 건축물이 한 데 모여 도시라는 하나의 스펙타클을 형성하면서 작품은 관객에게 공간의 표면으로부터 그 내부를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27개의 격자 속에서 건물을 향한 시선이 멀어지고 가까워진다. 영상의 빛이 격자를 채우며 시선의 움직임을 반복하고, 작가는 고정되지 않은 빛의 제스처를 건축물의 표면을 훑으며 추적하는 것이다.
규격화된 도시 공간 속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시선으로부터 감지된 불안은 점점 그 공간의 내부로 진입한다. 영상의 형식으로 도시의 외관과 표면을 포착했다면, 작가는 <통로>(Passage, 2016)에서 건물의 내부를 3D 애니메이션의 방식으로 상상한다. 지금까지 ‘빛’의 형태와 그것이 매개한 풍경에 초점을 맞춰 온 작가는 이 작업에서 빛이 비껴가는 공간, 즉 그림자 공간을 이야기 한다. 풍경의 뒷면인 그림자는 작가에게 불안이 응집된 영역이다. 유년시절, 1980년 광주 민중 항쟁을 겪은 작가는 계엄군의 헤드라이트를 기억한다. 광주 민중 항쟁 혹은 5.18 민주화운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전라남도 광주시 및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운동으로서, 민주화를 수호하기 위해 저항했던 광주 시민을 부당한 공권력으로 진압해 다수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사건은 작가에게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며 다가온 폭력의 잔상으로 남아있다. 먼 곳에서 대상을 찾아 헤매는 시선, 숨을 죽인 채 건물을 살피던 빛에 대한 기억은 작가에게 불안의 형상으로 그림자를 남긴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정지된 이미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허구적이지만 새로운 층위의 리얼리티를 구축한다. 정정주는 이미지의 잔상효과를 통해 움직임의 환영을 구현한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바탕으로 도시가 감춰온 장소들을 상상한다. 도시와 건축의 외피를 실재적 이미지로 드러냈다면 빛이 닿지 않는 공간, 도시라는 실체 없는 이미지가 비추지 못하는 장소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허구적 이미지로 구현하는 것이다. <통로>는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통해 건축의 구조를 묘사하고 공간의 내부를 샅샅이 훑는다. 빛의 움직임에 따라 드리워졌다 금세 사라지는 그림자는 우리의 시선이 도망칠 공간을 은폐한다. 머물 곳 없는 눈동자가 화면의 표면을 방황하며 안전한 장소를 바삐 추격한다. 인간이 외부의 자극과 공포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필요로 한다고 할 때, 정정주는 개인이 점점 고립되고 소외 되어가는 도시 공간에서 불안이 응집한 곳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공동의 영역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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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SungHong
민성홍은 사라진 신체와 사물에 붙은 기억에 관해 작업한다. 사물의 가변성, 유연성, 임시성이라는 속성으로부터 버려진 물건, 그림들을 다시 새로운 형태로 변환한다. 작가는 한동안 도시재개발로 인해 인간의 이주 및 이동의 과정에서 남겨진 사물들을 수집하고 변형하며 재조합 해왔다. 누군가 쓰다 길에 내어놓은 가구를 해체하여 다른 사물들과 연결하거나, 버려진 그림을 접붙이는 방식은 다소 주술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연결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 이산과 집단 그리고 사물이 잃어버린 역사에 관여하고, 사물에 깃든 기억을 통해 한 개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그 양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의 작업에는 ‘새’가 자주 등장한다. 새의 부리가 환경에 적응하며 저마다 다르게 진화했다는 사실로부터 하나의 개체가 주변의 조건과 마주하는 방식을 관찰하는 것이다. 외부 환경과 바깥 세계의 흔적으로서 새의 상징적 이미지는 2004년부터 그의 작업에서 세라믹 소재로 꾸준히 출현해왔다. 초창기에는 새라는 형상을 드러내는데 집중했다면 2015년부터는 눈과 부리, 깃털의 세부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올빼미, 갈매기, 오리, 공작 등 개체를 분화하여 다양성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는 ‘새’라는 하나의 생물학적 종 안에서 먹고 살아가는 여러 가지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새의 이미지는 점점 인간의 몸과 신체적 이미지를 가리키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중첩된 감성: 카로셀>(Overlaped Sensibility: Carousel, 2015)에서 작가는 새 머리에 ‘몸체’를 만들어주면서 인간의 신체적 스케일과 형상을 구축해간다. 이후 <난청지역: 안테나 새>(The Blanket Area: Antenna Bird, 2016)에서는 새 머리에 안테나를 몸체로 결합한다. 무형의 신호를 붙잡아 시각화 하거나 대상을 찾아내는 안테나의 기능은 새가 가진 이미지와 만나며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킨다. 새는 많은 문화권에서 인간과 하늘을 매개하는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의미를 지닌다. 새 깃털을 제의의 매개물로 사용한 아메리카 인디언, 새가 나는 모습이나 그 소리로 운수와 길흉을 점하곤 했던 한국의 풍습에서처럼, 작가는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는 문화적 산물로서 새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에서 작동하는 믿음의 기제와 그 작동 방식을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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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속된 울타리 Fence Around> 에서는 이제까지의 작업을 수행적으로(performative) 통합하면서 동시대 디아스포라diaspora에 집중한다. 그는 “현 사회의 시스템들에 의해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본인의 위치가 이주(이동)되는 상황에서 수집된 일상의 폐기물을 오브제로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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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ift_ 표류하는 사물들 > 전시에서 작가는 상황적 , 인식적 변화로 인해 정체성이 불분명해지거나 불확실해진 존재를 상징하는 사물들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해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을 은유한다 . 이로써 사물이 가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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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목인 〈다시락(多侍樂)〉은 ‘다시래기’ 굿에서 가져온 것이다. 상주와 유족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한 장례의 놀이다. 옛 풍습에서 상을 당했을 때, 처음에는 곡을 하고 울다가고 장례를 치를 때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상여를 주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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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ming of Seeming
민성홍 19 May - 1 July 2022신체 (Body) 는 인간 및 자연의 모든 요소들의 경험들이 재구조화된 유기체인 것이고 이것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와 환경적 영향은 이 대상 위에 덮여서 위장되어 지거나 장식 되어져 있는 가면과 유사한 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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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락多侍樂>(Playing with everyone, 2016)에서 세라믹 새 머리와 결합된 몸체는 인간의 신체 스케일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수집된 폐가구 부품들, 연꽃, 지화(紙花), 오방기, 염주 등 무속용품들이 함께 결합되었다. 점점 비대해지는 몸체에 가려지거나 파묻혀진 새 머리는 <보임과 보임>(Seeming of Seeming, 2020)에 이르러 완전히 사라진다. 새 머리를 지탱하던 구조물은 독립성을 얻으며, 각기 다른 장소로부터 발굴된 오브제의 결합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지 집중하기를 제안한다. 신체와 특정한 사물이 주고 받는 무형의 에너지에 관한 탐구는 ‘스킨 레이어’(Skin_Layer, 2023) 연작에서 이어진다. 《수신체와 발신체》 전시(Receiner and Tranmitter, 2023)에서 수집한 이 오브제 작업은 인간의 이동에 따라 남겨진 사물의 기억과 경험에 집중한다.
‘스킨 레이어’ 연작은 출처 모를 곳에서 수집한 사물을 변형 후 장식적인 요소를 더해 가변적인 신체 구조물로 구현한 작업이다. 앞선 작업에서 다뤄온 것처럼, 그의 사물들은 인간 생활 터전에 자리하면서 저 스스로의 기능을 수행해왔던 대상이다. 그의 또 다른 작업 ‘가변성을 위한 연습’(2019/2022) 연작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신체성을 실험한다. 버려진 장식용 산수화를 부채처럼 접고 오색실로 박음질한 이 작업은 고정할 수 없고 한 손에 붙잡히지 않는 이미지의 ‘가변’적 성질을 물질화 한다. 천과 실에 꿰어진 채 매달린 구슬들은 관객의 움직임에 의해 흔들린다. 부채질하는 신체의 제스처, 작품 앞을 거니는 관객의 운동성을 예비하는 작업은 외부의 자극에 노출된 우리의 몸과 그리고 외부로 영향을 행사하는 우리의 행위를 가시화 한다.
신체를 매개로 수신과 발신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가는 신작 <순환하는 신체>(Round of Body, 2024)에서 구조적 확장을 시도한다. 그는 사물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모종의 ‘신체성’을 갖추게 된 이 사물들은 관객 혹은 공간과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말하자면 작업은 사회와 문화라는 외부적 요인과, 상황을 작품이라는 장소로 수신 받아 새로운 발신의 주체로서 발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수신과 발신을 되풀이 하는 순환의 과정에서 작가는 누락되는 것들,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반복되는 장면을 찾는다. 사라진 인간의 신체와 상실된 사물의 기능을 상상하면서 또 다른 사물과 연결해 사물에 새겨진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민성홍의 작업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했던 것들이 끊임없이 다시 연결되면서 구조적이고 인식적인 전환을 도모하며, 이전과 다른 영역에서 출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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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hong Min
다시락 : 대칭적 불균형, 2018세라믹, 수집된 오브제, 나무에 체색, 구슬, 바퀴, 조명
150 x 150 x 150 cm -
Sunghong Min
적응태도_위장망, 2020피그먼트 프린트
125 x 100 cm -
Sunghong Min
Skin_Layer, 2022수집된 오브제, 나무, 구슬, 천에 피그먼트 프린트, 우레탄 비닐, 금속링, 바퀴, 종
235 x 240 x 140 cm -
Sunghong Min
가변성을 위한 연습_M8, 2022수집된 산수화, 볼펜, 재봉틀 작업, 안료,구슬
67 x 29.5 cm -
Sunghong Min
Overlapped Sensibility: Bird, 2022세라믹, 나무에 채색
58 x 44 x 4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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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 SangHoon
안상훈은 회화라는 형식적 토대 위에서 언어화 되지 않는 세계의 다양한 면면들을 입체화 하거나, 입체적인 공간의 평면성을 탐구한다. 재현과 추상, 우연성과 필연성 사이에서 누락되는 언어들을 이미지로 붙잡는다. 특히 그는 회화에서 캔버스 형식의 경계와 프레임 안팎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미술의 역사에서 회화는 새로운 기술와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그 형식의 당위를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외부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해온 회화의 전통적인 역할은 사진 기술의 발명으로 인해 다른 방식으로 규정되어야 했으며, 디지털 기술의 출현에 따라 이미지의 물질성에 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작가는 회화의 변천사로부터 당대 이미지의 성질과 조건을 탐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회화의 근본적인 성질이 무엇인지 질문하기 위함이다.
예술의 목적은 대상 자체 형상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을 투영하고, 서로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물질적 매개체다. 작품은 눈 앞에서 사라진 대상을 대신하며 우리는 이 오브제로 인해 추동되는 타인의 기억에서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한다. 안상훈은 회화를 매개로 구상과 추상, 미학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질문하고 있다. 추상적 이미지를 그리는 그의 작품은 얼핏 모더니즘 추상미학의 언어를 닮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과거로 회귀하거나 모더니즘 추상미술 문법을 빌려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추상’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미지 자체보다 이미지를 둘러싼 프레임으로부터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논의한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매일의 기록, 일기와 유사하지만 그렇다고 그림일기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회화가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을 경계한다. 이미지를 의미나 해석으로 이해하기 보다 바깥의 풍경을 기록하는 장소로서 다루며, 이미지 안팎의 경계를 바라봐주길 요청하는 것이다. 한 점의 그림은 캔버스, 안료, 지지체 등의 물질로 만들어진 이미지와 제목, 서명, 작품이 제작된 시기, 크기 등 사회문화적으로 의미화 된 요소들에 의해 구성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작업의 제목을 먼저 정해두고 이미지를 구성하거나, 완성된 작업을 사진으로 기록한 뒤 파일의 일련번호를 구글링 하여 검색된 정보를 바탕으로 제목을 선택하기도 한다. 제목이 작품을 설명하거나 그것의 의미를 제시하는 것이라 오해해선 안된다. 전략적인 우연을 통해 추상적 이미지를 감상적으로 바라보거나 이미 정해진 의미로 해석할 가능성을 교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에서 의미는 그림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주변부에서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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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사면에 얇은 페인트 비닐을 설치하고 그 위에 회화 작업을 하면서 특정 재료와 방법론이 지닌 회화의 보편적 기준에 대한 인식을 실험하기도 하였다 . 작가는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환경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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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사용하지 않거나 그 존재여부가 불명확했던 장소와 공간에서 회화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 회화를 다양한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관람객들은 그 작업위치가 표기된 지도를 들고 잔디밭 , 지하계단 , 컨테이너 , 농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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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년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사업 시각부문 선정 ) 회화의 진행 과정 속에 한시적이지만 존재했던 다양한 얼굴 ( 이미지 ) 과 고유의 시간을 보여준다 . 전시는 축적된 시간을 품은 175x80cm 사이즈의 회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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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문화재단에서 수거된 현수막과 회화가벽과 전시장 벽면에 회화의 시간성을 담은 확장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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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훈은 의미와 형상의 어긋남을 좇는 그리기와 이미지에 집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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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의 경계에서 작가는 분명하게 언어화 되지 않는 회화의 성질을 여러 공간과 상황 안에서 녹여낸다. 그리고 그다지 낯설지도, 그렇다고 익숙하지도 않은 이미지를 그려내면서 이미지의 어떠한 지점이 미학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질문한다. 미적 기준과 가치에 관한 질문은 캔버스 화면으로부터 전시 공간까지 확장된다. 갤러리조선, 인천아트플랫폼, 경기창작센터, 문화비축기지 등에서 진행한 전시에서는 공간의 구조와 관객의 동선 등을 고려하여 전시장을 일종의 캔버스 삼았다. 입체적 공간의 평면성을 발굴하면서 회화에 관한 형식적 실험을 이어가는 것이다. 가령, 개인전 《반복되는 문장으로 주름을 연습했다》(2023. 3. 26. ~ 5. 6. 갤러리조선)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갤러리를 진입하는 문과 작가가 특수 제작한 문. 여러 개의 문을 거쳐 전시장으로 입장하면 다양한 이미지가 제 각기 고유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거듭 관객의 앞을 가로막는 문은 탁 트인 공간이 굴곡을 만들며 공간과 공간 사이의 주름처럼 끼어든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진첩에서 삭제된 이미지의 일부를 캔버스에 옮겨 오는 작업 등을 이어오고 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예정인 디지털 이미지로부터 이미지의 찰나와 순간성을 건져오는 것이다. 그는 사라질 이미지가 그의 어떤 행위와 결합해 그림의 시간 속에 담겨서, 어떤 기억을 불확실함 속에서 간직한, 어떤 감춰진 흔적들을 시간 속에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그림이 될 거라고 말했다. <간만에 낮잠을 자야겠다>(I should take a nap in a long time, 2024)와 <가끔 그럴 때가 있다>(That happens sometimes, 2024)와 같이 일상의 대화에서 나올 법한 그림의 제목에서 감지할 수 있듯, 하나의 사건이 되지 못한 채 삭제될 운명에 처한 이미지로부터 구성될 수 있는 서사는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말이다.
시끄럽게 소리치는 색깔, 거칠게 휘어진 신체의 제스처들, 캔버스 사이를 가로지르는 붓질, 겹겹이 덧입혀진 질료의 층, 붓의 갈라진 결을 따라 만들어진 무수한 선들. 회화를 따라가는 시선의 끝에 남겨진 것은 그림의 의미가 아니다. 의미를 떠올릴 수 없음.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관객의 눈을 기다리고 있다. 요컨대, 작가는 당대 회화가 가진 물질적 토대를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하려는 무수한 언어와 우리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이미지의 관계를 탐색한다.
Frieze seoul 2024 (C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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